열네 살 성수

19화 도시락

by 왕눈이 누님

파란깃발이다.

조개탄 창고에 파란 깃발이 걸렸다.


남자 아이들이 와~ 소리를 지르며 양동이를 들고 창고로 뛰어간다.


영하 3도가 넘어가면 빨강깃발이 걸린다.

난로를 안피워도 되는 추위라고 하신다.


그런데 오늘은 파랑깃발이 걸린거다.

영하 3도 아래로 내려가는 추위라서 난로를 피울 조개탄을 준다는 신호다.


아이들이 주워 온 솔방울자루도 난로 옆으로 가지고 온다. 불쏘시개로 쓰기도 하고 조개탄이 부족하면 난로에 더 넣으려고 준비해둔거다.


조개탄은 불이 붙으려면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신문지, 나무 조각, 솔방울 같은 불이 잘 붙는 불쏘시개에 먼저 불을 붙이고 조개탄에 옮겨 붙게 해야 하는데 조개탄에 불이 붙으려면 연기가 여간 매운게 아니다.


난로에서 매운 연기가 나지 않는걸 보니 이제 난로불이 잘 붙었나보다.


도시락을 꺼내 난로 위에 올려놓는다.

차곡차곡 올려놓는다.

난로 위에 도시락이 수북하다.


도시락이 데워지는 구수한 냄새와 함께 차갑기만 하던 교실이 따스하게 데워진다.

덩달아 아이들의 얼었던 볼도 발갛게 익어 간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요동을 치는데 점심시간 종은 언제 울리려는지 감감무소식이다.


‘뎅~뎅~뎅~’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 난로 앞으로 모여든다.

뜨거워진 양은 도시락을 귓볼을 만지며 꺼내 얼렁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선생님이 먼저 도시락 검사를 하신다.

아이들은 도시락 뚜껑을 열고 선생님의 도시락 검사가 끝나길 목젖 빠지게 기다린다.


앞에 앉은 미숙이가 도시락을 가지고 뒤로 돌아 성수의 책상을 보고 앉는다.

성수도 환한 얼굴로 도시락 뚜껑을 연다.


쌀과 보리가 적당히 섞인 도시락은 강낭콩 몇 개가 꽃처럼 수놓아져 있다.

오이지무침에 깍두기 너댓개, 아버지 밥상에 올라가는 빨강 소세지부침 한 개가 반찬 뚜껑을 열고 먹어도 부끄럽지 않다.


미숙이는 시커먼 보리밥에 무장아찌가 든 도시락을,

짝꿍 순진이는 하얀 쌀밥에 노랑 단무지가 가득 든 도시락을 꺼냈다.


선생님은 순진이의 하얀 쌀밥 도시락은 안된다고 하셨다.

보리와 콩을 섞어야 한다고 하신다. 혼분식 장려기간이라고.

쌀이 부족한 나라여서 쌀밥만 먹으면 안된다고 하셨다.


성수는 오늘 아침에도 허옇게 쌀로만 골라서 수북이 퍼담은 아버지의 밥상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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