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성수

20화 겨우살이

by 왕눈이 누님

해마다 벼 타작이 끝나면 어른들은 마을 가운데 넓은 논 두어마지기에 물을 가두어 두었다.


다른 논보다 더 바싹 벼이삭 티끌까지 자른 논은 겨울 추위에 물이 얼면 팽이치기, 썰매타기로 겨우내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주곤 하였다.


손재주 좋은 아버지는 굴러다니는 못이며 철사며 쇠붙이를 몽땅 모아두었다가 나무를 붙여 바닥을 만들고 그 바닥에 쇠붙이를 붙여 얼음바닥에 매끄럽게 나가는 썰매를 만들어 주셨다.


손잡이 끄뜨머리에는 못을 박아 얼어붙은 논바닥을 콕 찍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양쪽 손잡이는 짧은 손잡이, 긴 손잡이를 만들어 앉아서도 서서도 탈 수 있게 썰매 손잡이를 만드셨다.


아이들을 위해 만든다기 보다 만드는 것에 더 재미가 있어 보이는 아버지의 썰매 만들기는 진심이었고 동네에서 가장 멋진 썰매를 만드셨다.

그리고 가끔은 아버지도 논 썰매를 즐기셨다.


앉은뱅이 썰매에 겁많은 막내 두수를 태우고 성수는 뒤에서 두수를 안고 조심스레 논바닥 바람을 가른다.

작년까지는 두수의 썰매에 끈을 묶어 끌고 다녔는데 얼음바닥에서 썰매를 끌고 뛰려면 자꾸 넘어져서 두수도 성수도 떨어져서 뒹굴기 일쑤였다.


“무서워, 재밌어, 살살, 쎄게......”


겁 많은 막내 두수의 오락가락 주문에 성수도 신이 나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손잡이를 길게 만들어 서서 타는 키다리 썰매는 천방지축 한수가 차지한다.


“너무 빨리 타면 넘어져.”

“두 다리에 힘 꽉 주고.”


누이들의 당부에도 한수의 썰매는 논바닥에 조금 들고 나온 티끌에 걸려 두어바퀴 구르고 한수도 같이 구른다.


콧물이 주르륵 나올라치면 양 소매로 쓰윽 닦아 볼때기에 일자를 그리고 옷소매에 일자를 그렸다.

그렇게 오남매는 신나게 온종일 논바닥을 누볐다.


찬바람에 손등이 시퍼렇게 터져 더 어찌 못하겠다 싶어 고개를 들어보면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굴뚝엔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부엌 바닥 세수대야에 뜨거운 물 퍼담아 오남매 얼은 손 담그면 손등이 놀라 화끈화끈 펄떡펄떡 뛰어올라 바지 마저 적시고.

부엌 아궁이 앞에 나란히 앉아 구루모 듬뿍 바른 손 불에 쬐고 있으면 젖은 옷 마르느라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오남매의 우애도 함께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오남매의 겨우살이는 그렇게 추억으로 가득 차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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