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성수

4화 입학 날

by 왕눈이 누님

입학날,


성수는 엄마가 겨우내 털실로 떠주신 품이 넉넉한 분홍색 털 스웨터를 입고 왼쪽 가슴에 하얀손수건을 길게 접어서 옷핀으로 달았다.

3월 꽃샘추위에 콧물이라도 나면 바로 코를 닦을 콧수건이다.


솜씨좋은 엄마는 하얀 가제손수건에 복숭아꽃 모양 수를 놓아주셨다.

나일롱 책보에도 ‘정성수’라고 수놓아 주셨고 검게 물들인 광목 신발주머니에도 ‘정성수’ 이름을 새겨주셨다.

두 살 위 언니 은수는 아홉 살에 학교를 가는 바람에 은수와 성수는 나란히 2학년 1학년이 되었다.


입학날이지만 엄마는 동생들을 돌보고 아버지 밥을 차려드려야 해서 성수는 언니와 함께 학교가는 뚝방길로 성큼성큼 앞장섰다.


운동장이 넓었다. 그네도 있고 미끄럼틀도 있다. 사람들도 많다.

어떤 친구는 새 옷에 가방을 메고 엄마와 함께 왔다.

하지만 성수는 괜찮다.

엄마가 겨우내 떠주신 분홍색 털스웨터가 마음에 들기도 했고, 손수건도 신발주머니도 엄마가 만들어주신 하나뿐인 맞춤이다.

동네 미숙이 영자도 엄마는 일 가시고 언니오빠랑 왔다.


선생님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이름을 부르셨다.

“정성수”


쪼르르 달려가서 선생님 앞에 두 줄로 섰다. 키가 작은 성수는 앞에서 두 번째 줄이다.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은 선생님 다리가 빨갛게 추워보였다.

교장선생님 말씀이 길었다.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친구는 지루한지 발로 땅을 파고 비비고 있다.

선생님께 혼날까봐 괜히 성수가 조마조마하다.

선생님한테 걸린 옆 친구는 신발로 파놓은 운동장 흙을 두 손으로 꼭꼭 다져서 다 메꾼 뒤에야 쓰윽~ 소매로 퍼런 콧물을 닦았다.

‘콧수건도 있는데.’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어 흙을 탈탈 털어 광목신발주머니에 넣고 맨발로 딛은 바닥은 송곳처럼 차가웠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언니 은수가 집안일, 동생돌보기를 성수한테 떠맡기고 빠져나가 자유를 누리던 그 학교, 그 학교에 성수도 입학을 한 것이다.


두명씩 앉은 긴 나무의자는 딱딱하고 발이 교실바닥에 닿지 않는다.

책상은 구멍과 줄로 그어져서 울퉁불퉁하고 가운데쯤은 넘지 말라는 듯 칼로 길게 여러줄 패어있다.

갈라진 마루바닥 틈에서 찬바람이 올라와 섬찟 놀란다.


짝을 돌아보았다. 소매로 코를 닦아 말라붙은 코가 옆으로 지익 그려진 짝의 이름은 ‘곽순진’이라고 했다.

‘순진하게 생겨가지고는.’


“글자 아는 사람?”

지난 겨울내내 은수언니한테 매섭게 배운 글자 몇 개를 아는 성수는 선생님의 물음에 살그마니 손을 들었다. 둘러보니 꽉 찬 교실에 손을 든 아이는 너댓명밖에 안된다.

짝꿍 순진이는 존경스런 눈으로 성수를 우러러본다.

웬지 인정받은 거 같은 기분에 성수는 엉덩이를 뒤로 밀어 허리를 꼿꼿하게 고쳐앉았고 그 바람에 다리가 더 달랑달랑해졌다.

그렇게 야속하고 매섭던 은수 언니가 순간 고마워졌다.


학교와 교실에서 지켜야 할 일, 복도에서 걸어다니는 법, 변소에서 지켜야 할 일 같은 것들을 배웠다.

해야할 것 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


은수언니가 다닌 학교는 재미만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학교에 입학해보니 학교가 힘들기도 하다.


올때는 은수언니와 함께 왔지만 갈때는 미숙이 영자와 함께다.

언니는 2학년이라서 아직 공부가 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 엄마따라 은산장에 다녀본 길이라서 괜찮다.


풀러보지도 않은 책보를 다시 허리에 단단히 묶고 발이 커져서 엄지발가락이 툭 튀어나온 신발을 신고 학교를 나섰다.

그래도 빨리 집에 가서 오늘 학교에서 배운 거를 엄마와 동생들한테 가서 자랑할거다.

성수는 미숙이, 영자와 같이 깔깔깔 깨알같은 소리를 늘어놓으며 집으로 향하는 뚝방길로 들어섰다.


3월 꽃샘추위가 봄꽃이 못나오게 훼방 놓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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