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성수

5화 봄소풍

by 왕눈이 누님

소풍을 간다.

은산 뒷산 옥녀봉이다.


새벽부터 분주하다.

엄마는 갓지은 밥에 들기름 깨소금으로 간을 한다.

김 위에 밥을 넓게 펴고 단무지 노랗게 올리고 시금치와 당근으로 삼색이 어우리지게 올려 돌돌 말아 김밥을 싼다.

가운데 토막 모양이 예쁘게 나온 김밥은 아버지 밥상에 올리게 준비해두고, 그 다음 흐트러지지 않고 색이 곱게 나온 걸로 노랑 양은 도시락 두 개에 담아 은수와 성수 몫으로 챙겨둔다.

꼬투리나 배가 터져나온 김밥은 동생들 몫이다.


엄마가 밥솥에 앉혀 쪄내어 찬물에 담근 계란 두 개를 은수 성수 한 개씩 세면봉투에 둘둘 싸고, 지난 장에 사온 사이다병이랑 나란히 가방에 넣었다.

큰집 오빠들이 중학교에 가면서 작아진 가방을 준 것이 아주 요긴하게 쓰일 판이다.

부러워하는 동생들을 뒤로 하고 성수는 며칠전부터 깨끗한 걸레로 구석구석 닦아서 광이 번쩍번쩍 나는 낡은 티가 나지 않는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두 줄로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파랑색 보리가 바람따라 살랑인다.

옥녀봉 깔딱고개를 나뭇가지 풀뿌리를 잡고 올라갔다.

숨이 턱 멎을거 같을 때 옥녀봉 정상에 넓고 파란 평지가 펼쳐졌다.


저 멀리 은산장과 학교가 보이고 그 언덕너머 어디 엄마와 동생이 있는 집도 있을 것이다.


풀밭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찐계란과 사이다병을 꺼냈다.

아버지 반찬으로만 올라갈 수 있는 계란을 통째로 한 개나 쌌다.

게다가 사이다를 한병이나 오롯이 성수몫으로 가지고 온거다.


아버지방 청소하다가 조금 맛본적 있는 아버지 약으로만 드시던 사이다를 한병이나 말이다.


병따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어떻게 뚜껑을 딸지 고민하고 눈치를 살핀다. 어느 사이 순진이가 병따개를 능숙하게 따고 친구들 사이다병도 따주었다. 순진이 부모님께서 은산에서 가게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찐계란 껍질 벗겨 조그맣게 한입 베물고 사이다 한 모금을 마셨다.

톡 쏘는 사이다가 코로 다시 나올거 같은 짜릿함이다.


한입 한입, 찐 계란 하나는 다 없어졌는데 사이다는 아직 반병이나 남아있다.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한 병을 다 먹으려니 많기도 하고 목구멍으로 빨리 넘어가지지도 않는다.

아까운거 엎질러지면 큰일이니까 잘 세워놓고 김밥이 든 양은 도시락을 꺼냈다.

노랑 단무지, 파랑 시금치, 주황색 당근이 어우러진 김밥이 고소한 냄새와 함께 얼굴을 쏙 내민다.

양은 도시락을 여는 순간 ‘엄마는 요술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순진이 도시락을 슬쩍 넘겨다 보았다. 김에 밥을 두르고 노랑 단무지만 가득 넣어 두르르 만 김밥이다.

슬며서 순진이 도시락에 삼색 김밥 하나를 건네주었다.

찐 계란을 한봉지나 가져온 순진이가 계란 하나를 성수에게 말없이 준다.

순진이는 계란과 사이다를 너무 급하게 먹는거 같아 걱정이다.


“지금부터 보물찾기 시간이에요.”

“보물은 욕심부리지 말고 하나씩만 찾아오세요. 상품이 있어요.”

아이들은 보물을 찾으러 사방으로 흩어졌다.

우리가 점심을 먹는 사이 선생님들께서 보물을 숨기셨다고 했다.


‘보물이 어떻게 생겼을까?’

‘아까 오실 때 선생님한테 보물이 없었는데?’


여기저기서 보물을 찾았다고 신나들 하는데 성수는 아무리 찾아도 보물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못찾았어?”

“응, 보물이 안보여.”

“내가 두 개 찾았어. 하나 너 줄게.”


미숙이가 성수 손에 보물이라고 쥐어주었다.

세상에나 보물이 종이 접은 것이었다. 종이에 보물을 글씨로 써서 두 번 접은 종이조각이 보물이었던 거다. 우리가 김밥에 사이다를 먹느라고 정신없는 동안 선생님들이 나뭇가지와 바위틈에 숨겨두셨는데 성수는 진짜 보물을 찾았던 거다.


‘은수 언니는 이런 것도 안 알려주고.’

약이 바짝 오른 성수는 급하게 찐계란과 김밥, 사이다를 먹은 탓인지 뱃속이 부글부글 거린다. 화장실도 없는거 같은데 큰일이다.


“선생님, 순진이가 이상해요.”

순진이가 배를 움켜쥐고 새파랗게 질려서 뒹굴고 있다.

선생님은 순진이를 햇볕 잘드는 언덕에 눕히고는 등과 팔, 손을 쓰다듬어 내렸다.

십자가가 그려진 하얀 가방에서 실과 바늘을 꺼내 엄지손톱 위를 실로 꽁꽁 묶고 바늘을 머리에 두어번 긁적이셨다.


순식간에 손톱 위를 찔러버렸다.

바늘에 찔린 양쪽 손톱 위에서 시커먼 피가 징그럽게 나왔다.

급하게 먹은 찐 계란이 얹혀서 급체한 거라고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금새 순진이는 아까 사이다병을 따주던 그 얼굴로 돌아왔다.


한바탕 소동을 부리고 장기자랑 시간이 되었다.

넉살 좋은 친구들 몇 명이 나가서 코미디언 춤을 추고 노래하고 아이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박수를 쳤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장기자랑을 하는 배짱을 가진 친구들이 성수는 부럽기만 하다.


‘나는 선생님이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콩닥대는데’


가을소풍을 기대하며 풀뿌리를 잡고 올라갔던 깔딱고개를 이번에는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가며 내려왔다.

다리도 아프고 화장실도 가고 싶고.

참으로 길고 고단한 하루다.


저녁밥도 거른 채 새근새근 잠이 든 성수 머리맡에 은수언니는 살며시 자리끼를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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