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성수

6화 농번기 방학...우렁이도 미꾸라지도

by 왕눈이 누님

“내일부터 토요일까지 농번기 방학이에요. 부모님 일손 열심히 돕고 다음주에 학교에 오도록 합니다.”


늦봄과 가을에 한 번씩 주는 고난의 농번기 방학,

모내기가 한창이자 농번기 방학이 시작되었다.


밤새 물을 대 가까스로 논을 갈아 써래질하여 한시가 바쁘게 모내기를 해야 하는 절박한 시기에 아이를 많이 낳은 집은 농번기 방학 덕을 톡톡하게 보았다.


“아들을 낳았어야지.”

아버지는 싸늘하게 핀잔을 내뱉고 엄마와 딸들을 흘겨보고는 오늘도 백구두를 신고 나가신다.

힘쓰는 아들 덕을 보아야 하는데 줄줄이 딸만 셋을 내리 낳은 엄마는 죄인처럼 두 아들 머리만 쓰다듬는다.

“얼렁 커라. 얼렁 커라. 우리 아들들.”

냇둑 너머 휘~ 걸어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밉다.


은수언니는 벌써 논으로 나가 일꾼들 속에서 뛰어다니고 논두렁 밭두렁을 바삐 오가는 엄마가 안스러워 성수는 막내 두수를 포대기에 업고 두말 않고 집안 일을 거든다.


모내기는 머슴아저씨와 일꾼들이 하드래도 집주인이 주인노릇해야 한다며 언니 은수는 큰아들인양 나가서 일꾼들을 제법 잘 부린다.


엄마는 또아리를 받친 광주리에 모밥을 이고 논둑으로 걸어 나가신다. 광주리에는 보리밥에 열무겉절이, 풀치조림, 된장국에 된장과 풋고추가 푸짐하게 담겨있다.

성수는 막내 두수를 업은 채 부엌 술독 항아리에서 주전자에 막걸리 가득 퍼담아 사기대접 몇 개 챙겨 엄마 뒤를 따른다. 남철이가 동생 한수를 챙겨 강아지풀을 뜯으며 따라온다.


남철이 손을 냅다 뿌리친 한수가 모내기가 한창 중인 논둑으로 내달렸다. 요리조리 못줄을 잡으며 일꾼들을 지시하던 은수언니가 뛰어오는 한수에게 소리친다.

“한수야, 소, 소, 조심해.”


논둑에 잠시 묶어 둔 고삐가 풀린 소는 한수의 뜀박질에 놀라 그만 머리로 한수를 들이받았다.

순식간에 귀하디 귀한 아들 한수는 논바닥에 거꾸로 처박히고 엄마는 얼굴이 허옇게 질려 손만 저으시고 모내기하던 일꾼들은 달려가 한수를 일으킨다.


모내기를 하느라 써래질 된 논은 부드럽고 물도 차 있어서 다행히 다친데는 없는 듯하다.

혼이 쏙 빠져 이마에 거머리가 붙은 것도 모르고 논둑에 앉은 한수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이내 아버지의 불호령이 걱정되어 부화가 치민다.


성수는 한수 이마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 냅다 논둑에 던지고 발로 거머리를 비벼대며 화풀이를 한다.

샘가에 데려가 논흙을 씻기고 코도 풀게 하고 옷도 갈아입히니 인물이 참 훤하다.

‘한심한 놈’

‘이런 아들이 뭐가 좋다고’

아들타령만 하는 어른들 생각에 괜히 심통이 난다.


일꾼들은 새참으로 나갔던 국수도 한그릇씩 드신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모밥과 막걸리를 한 그릇씩 비우고는 논둑에 벌러덩 누워 밀짚모자 사이로 지나가는 구름을 보며 한가히 노래를 흥얼거린다.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주전자 밑에 깔린 막걸리 찌꺼기를 벌컥 마신 남철이는 얼굴이 벌개져서 헤벌쭉 웃으면서 못줄을 뺐다 박았다 장난질이다.

‘거머리 붙으면 어쩌려고’


사남매는 논둑에 둘러 앉아 모밥을 맛나게 먹는다.

황소에 받힌 귀한 아들 한수 때문에 혼이 빠진 엄마는 넋없이 앉아 해맑게 모밥을 먹는 한수와 엄마 젖을 빠는 두수를 번갈아 쳐다본다.


“성수야, 우렁 잡아야 저녁 챙기지.”


사남매는 논에 물을 대는 포강으로 내려갔다.

마른 논에 물을 대는 포강은 빠지면 못나올 것처럼 시퍼렇다.

포강 가장자리 풀 숲에 넣을 넘어 더듬더듬하면 딱딱한 무언가가 손에 잡힌다.

우렁이다.


물뱀이 나올까 겁도 나지만 손을 넣을 때마다 두어개씩 잡혀 나오는 우렁이 잡기에 신이 난다.

새끼 우렁이는 더 커서 오라고 다시 포강 안으로 놓아주고 제법 큰 것들로만 잡아 보리밥을 퍼갔던 양은 밥통에 반이 넘게 담았다.


집에 가면 손이 야무진 은수언니는 샘에 앉아 우렁이 껍질을 깨어 속살을 깨끗이 씻어서 지천으로 널려있는 소시랭이 뜯어 요리사 엄마에게 드리겠지.

된장 풀어 소시랭이, 우렁이를 넣고 바글바글 끓이면 아버지의 밥상도 성수의 밥상도 성찬이 될 것이다.


“미꾸라지 잡자.”

새로 옷을 갈아 입은 한수가 또 어리광을 부린다.


오늘은 우렁이를 잡았으니 미꾸라지는 내일 잡자고 달래보지만 뗑깡쟁이 한수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성수는 집으로 뛰어가 체를 가지고 왔다.


콩이나 보리, 깨 같은 곡식에서 돌, 지푸라기 같은 것들을 골라내주는 체는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서 못쓰게 되면 미꾸라지 붕어 잡이로 그 쓰임이 여간 좋은게 아니다.


은수언니와 남철이가 윗논에서 자근자근 물에 잠긴 논흙을 밟아오면

한수는 아랫논에서 물꼬에 체를 받치고 있다가 미꾸라지 몇 마리가 꿈틀꿈틀 들어오면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성수는 체를 받아 물웅덩이에서 체를 흔들어 흙을 걸러낸다.


체 속에는 시커먼 미꾸라지들이 힘차게 춤을 추고, 저녁이 되면 엄마는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려 노랗게 뱃살을 드러내며 뒹구는 미꾸라지를 호박잎으로 박박 씻어 부추, 들깨로 어우러진 미꾸라지탕을 아버지 밥상에 올릴 것이다.


몹시 만족한 표정으로 밥숱가락을 뜰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자 성수는 미꾸라지를 논 바닥에 다시 내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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