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

좌절 아니고 희망

by Amy Shin

2024년은 다른 해보다 훨씬 더 빨리 지나가 버렸다.


작년 이맘때쯤, 얼마 남지 않은 신진 예술인 자격을 활용해 보려고 예술인 지원사업 여러 곳에 지원해 보았지만, 서류부터 탈락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만 앞서서 조바심 내던 시기였다.


3월. 생신 모임은 어떻게 할지 여쭤보려고 어머니께 전화했는데 아버지께서 병원에 계신단다. 처음엔 독감으로 주사를 맞으시나 해서 감기 걸리셨냐며 가볍게 말을 이었는데, 일터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신다고. 최악의 상황은 아니어서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바로 말씀을 안 하셨다는데, 하마터면 아버지를 뵙지도 못하고 이별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었다. 일반실로 이동한 후에도 간병인은 한 명만 출입할 수 있었고 두 달간 어머니께서 아버지 곁 병원 생활을 하셨다. 자식들은 필요한 물품 보내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뇌경색이었지만 아버지께서 직접 119에 연락하고 빠른 처치가 진행되어 다행히 지금은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되셨다.


예술인인 척하는 삶도 막혀버렸고 병원과 부모님 댁을 수시로 오가며 그렇게 작년 상반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러면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예술인으로 살겠다고 버둥댔던 것이 사실 퇴사하고 무너진 자존심과 불안했던 정신건강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감춰두고 싶던 불편한 감정들도 수면위로 올라왔다.


맞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내가 아무리 남들보다 잘할 것이라고, 분명 나는 재능이 있었다고 허공에 외쳐봤자 근거가 없이 떠도는 메아리일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그 당시 내 처지와 민낯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사실을 직면하니 기분 나쁜 것도 없었다. 좌절하지도 않았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 건강을 위해 스트레칭, 댄스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첫 수업부터 그동안 내 몸의 체형이 얼마나 무너져 있었는지, 근력 또한 얼마나 부족해졌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일상생활을 위해 필요한 근육조차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춤을 추겠으며 공연을 하겠다고 했던 건지…. 정말 지독한 몽상가.


7월이 되니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밴드 보컬 제의가 들어왔다. 보컬을 제외하고는 이미 완성이 되어 있던 팀이었다. 부담 없이 그들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여러 장르의 노래들을 라이브 연주에 맞추어 부를 수 있어서 합주 시간이 기다려졌다.


운동하며 노래하며 24년의 나머지 반을 조용히 떠나보냈다.


25년 1월은 운동도 밴드도 일종의 방학으로 지내고 지금 2월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다.

바로 서는 자세와 기본 발성부터 차근차근 채워나가며 매일 매달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2025년에는 꼭 데뷔하겠다던 부질없던 계획은, 웃으며 기억 저편으로 흘려보내고

건강하게 지내다가 또 좋은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말고, 꽉 붙잡으려 한다.


퇴사 후 쉬는 동안 정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안정되었지만, 지금도 불현듯 실용음악 학위를 준비할까 아니면 모아둔 퇴직금으로 앨범 작업을 할까? 꿈같은 상상들을 한다.


남은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도 궁금하다.

매일매일 바른 선택을 하기만을 바랄 뿐.


언젠간 내 목소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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