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king (street performing); 거리공연
22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 한 활동들을 하나씩 정리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하나라도 더 채워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춥고 의지도 약해져서 더는 주저할 수가 없다.
21년 드림 아티스트-김포 문화재단 프로그램을 마무리한 후 그대로 수면 아래로 또 가라앉을까 봐
또 한 발 내디뎠다.
21년 김포 버스커 육성형 10월 모집.
동영상을 첨부하고 신청메일을 보낸 후 대면 오디션을 보는 것이 버스커가 되는 절차다.
반주음악에 노래만 부르는 건 너무 매력이 없으므로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노래를 불러서 영상을 찍기로 했다.
어떤 노래가 좋을까.. 그래! 내가 좋아하는 남자 발라드곡을 시도해보자
'사랑합니다-팀'
완성도가 높은 반주 악보를 손에 넣고 연습을 시작했다.
하루, 이틀, 사흘....... 분명 실력은 느는데 촬영을 하면 실수 연발.
며칠 더 하면 완벽해질까? 아니 계속 지쳐만 가는데 지금 촬영을 마무리하고 이메일을 보내버리자.
남자 음역대라 불안정한 목소리가 섞이고 건반 실수를 해서 맘에 썩 들진 않지만 재단에 메일을 보냈다.
서류심사 통과 문자를 받고 대면 오디션을 준비한다.
원랜 공원에 나가 실제 관객들 앞에서 실연을 하였다는데 코로나 시국이라 아트홀에서 재단 관계자들 앞에서 공연을 하였다.
질 좋은 반주음악을 찾자. MBC '나는 가수다'에서 박정현이 부른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의 MR.
노래만 잘하면 되는데 시와 같은 가사가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지. 결국 가사지를 들고 오디션장을 찾았다.
드림 아티스트 참여할 때 뵈었던 재단 직원분들이 계셨다. 안면이 있긴 하지만 통성명도 못 해본 사이다.
김포 버스커들의 자랑거리와 자부심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오디션장을 나왔다.
김포 버스커 합격 소식을 듣고 고민이 생겼다.
자존심 때문에 반주음악만으로 노래하기는 싫으니 건반을 가지고 나가서 반주하면서 노래를 해야겠다.
그러려면 음향장비가 필요하다. 건반, 마이크, 앰프, 스피커 등이 기본 구성이다.
회사 다니면서 배운 얕은 지식이 독이 되어 좋은 스펙의 장비를 찾으면 비용이 부담이고 저렴한 구성으로 하자니 음질이 아쉬웠다.
N포털 버스커들이 모인 카페에 가입해서 정보도 구해봤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수인 내가 큰돈을 들여 장비를 구입하기는 무리가 있다.
이런저런 생각과 계획을 하면서 몇 달이 지났다.
22년 3월 10일 김포 버스커 워크숍 날.
간단한 악기와 소수의 공연자로 오프닝, 클로징 무대를 꾸미려 한다는 재단 담당자의 전화가 왔다.
MR 반주로 노래 세곡 정도 가능하겠냐는 문의와 함께.
준비된 곡은 하나도 없었지만 기회는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덥석 하겠다고 해버렸다.
'part of your world -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ost'
'살다 보면 - 뮤지컬 서편제 ost'
'Dynamite - 방탄소년단'
이렇게 세 곡을 고르고 연습을 시작했다.
일주일 전에 공연 제안을 받고 연습하기엔 무리였던 것 같다.
관객과의 대화거리를 적은 큐시트까지 준비해놓고
정작 가사를 다 외울 자신이 없어서 악보를 챙겨가고 보면대 준비를 부탁드렸다.
클로징으로 섭외받고 갔는데 가서 보니 오프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악기 준비시간 때문에 클로징으로 바뀌었다는 팀은 기타와 비파 협주...
아마도 무대 퀄리티 때문에 내가 오프닝으로 변경된 것 같았는데 서운하기는커녕 도리어 감사했다.
아직 내빈들이 다 도착하지 않았을 때 어영부영 공연을 하게 되어서 말이다.
MR 반주와 마이크 하나로 단독 공연... 평생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나름 재치 있게 준비해 간 멘트도 곡 중간중간하면서 떨리는 소리로 노래 세 곡을 완창 했다.
본 행사가 시작되고 시장님의 말씀이 있었는데 내가 부른 '살다 보면' 노래에 위로를 받았다고 하셨다.
내 노래로 누군가가 위로를 받았다는 말도 생전 처음 들었다.
가수들이 으레 하는 말, 듣는 이에게 위로와 감동이 되는 음악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버스커라는 이름을 달고 한 첫 공연은 거금의 행사비도 받은 내 생에 첫 개인 유료 공연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공연자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공연이어서 너무 죄송하다. 가사도 못 외우고 보면대를 앞에 둔 채 앉아서 노래를 하다니.. 재단이 찍어 준 사진을 보니 외적으로도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었구나.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그날 공연 영상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준비했어야 했는데
처음이라 몰랐다. 핸드폰이라도 거치대에 얹고 녹화를 했어야 했는데... 앞으로 다른 공연이 있다면 꼭 녹화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3월 버스킹 워크숍 이후, 난 더 이상 단 한 번도 버스킹 무대를 갖지 못했다.
기관에서 초청을 받아서 가는 전문 버스커들의 반열에도 끼지 못하고
김포시가 허락하는 버스킹 스폿에서 자유롭게 신청하는 버스킹도 하지 못했다.
왜? 건반을 결국 지금까지도 구매를 못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스킹이 아닌 다른 활동을 하느라 챙기지 못하기도 했고 말이다.
추워지고 버스킹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계절이 되고 보니
음악 반주만 가지고 일단 거리로 나갔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이 준비만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난 그만큼의 시간도 에너지도 갖고 있지 않으니 일단 부딪혀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이렇게 올해의 버스킹은 끝이 났다.
내년 김포 버스커가 되려면 아마도 오디션을 다시 봐야 할 것이다.
내년에도 버스커가 된다면 맨몸으로 거리로 나가야겠다.
드림 아티스트 함께 했던 동료들을 꾀어서 같이 가야지.
오디션으로 준비했던 노래와 버스킹 워크숍에서 공연한 노래들은
따로 촬영을 해서 유튜브에 올릴 생각이다.
그동안 연습한 게 아까워서라도... 기록하려 한다.
비록 지금은 cover 곡들로만 채워지는 포트폴리오가 되겠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곡들로 메워지는 때가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