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 Shin May 10. 2023

침체

그래도 계속 구르면 이끼가 끼지 않을 거야

 오디션을 보고 왔다. 


 종합편성채널 중 노래 경연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방송사에서 새로 기획하는 방송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트로트 장르로 인기를 많이 얻은 채널인데 이번엔 10~50대 여성들 대상으로 장르 불문 모집을 했다. 아마추어만 지원할 수 있지만 프로 같은 아마추어들도 많으니까, 방송은 재미있을 것 같다. 


 처음 이메일 지원을 할 때는 별로 기대가 없었다. 지원서 작성이 어려운 것은 아니니까 타이핑 뚝딱뚝딱하고 동영상 파일을 첨부하라니까 연습도 없이 맥북 기본 앱인 포토 부스로 조명도 안 켜고 노래를 불러서 보냈다. 


 그 정도로 전혀 간절함이 묻어나지 않게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서류 통과 생각을 정말로 전혀 안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류 지원 일정이 끝날 무렵 오프라인 예선 참가에 대한 안내 전화가 왔다. 당장 며칠 뒤에 서울 어디로 와서 노래 한 곡을 부르고 가라고 했다. 


 그때부터 갑자기 온갖 기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진짜 방송에 출연하게 된다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이런저런 일들도 경험할 수 있겠구나. 그토록 바라던 누구누구와 협업곡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등등.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발랄하고 빠른 비트의 음악이다. 소위 k-pop, 아이돌 장르라고 불리는 노래들도 좋아하고 그렇게 춤추고 노래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에 맞는 노래는 좀 다른가 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나랑 안 어울린다고 한다. 그러면서 쏘울 풀한 노래들을 추천해 준다. R&B나 정통 발라드곡들을 말이다. 사실 박자가 느리고 호흡이 긴 노래들은 대체로 부르기가 더 어렵다. 가사도 슬프거나 우울한 내용도 많고. 그래서 그런 노래를 부르면 내 기분도 슬퍼진다. 


 기대하지 않았던 오디션에 기대가 생기니 사람들의 조언에 귀를 더 기울이게 되고 슬픈 R&B 곡을 예선 곡으로 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늘 이맘때면 날 괴롭히는 알레르기 비염과 함께 최악의 목 상태로 오디션을 보고 왔다. 너무 나이 들어 보일까 봐 너무 몸이 둔해 보일까 봐 원피스도 입고 안 신던 구두도 신고 메이크업도 신경 써서 하고 갔지만 정작 노래를 잘하지 못했고 결과도 낙방이었다. 


 난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런데 누구에게 보여야 하는 노래는 참 어렵다. 연습 과정이 즐겁지도 않고 노래가 참 어렵다고 느낀다. 마이크로 입력되어 다시 스피커를 통해 내 귀로 들어오는 내 목소리는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다. 귀에 들리는 목소리를 컨트롤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줄이고 성대가 조이고 몸도 경직이 되는지 참 메마른 소리가 되어 나온다. 숨이 적절하게 들어가야 촉촉한 소리가 나오는데 말이다. 


 남편이 연습 과정을 지켜보고 오디션 결과가 나온 후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것은 노래일까? 

혼자 노래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내 입에서 나와서 공기를 통해 바로 귀에 들어가는 내 목소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춤추면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마이크 잡고 노래하기는 쉽지 않다. 

무대 경험이 늘면 좋아지려나? 

조명이 무대에만 비춰서 객석이 캄캄한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은 두렵지 않다. 

연습하면서 노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은 몹시 어렵다. 

짜인 춤을 외워서 추기도 고되다.

한번 본 춤은 금방 따라 할 수 있었는데 요새는 여러 번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공연이 아닌 음원 속에 들리는 내 목소리가 갖고 싶은 걸까? 

OST에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하릴없이 그런 꿈을 꾼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내가 누군지 내가 무얼 원하는지 알고 싶다면서 브런치 첫 장을 열었지만 

사실 아직도 나에 대한 오리무중이다. 


 휘트니 휴스턴이 머라이어 캐리가 비욘세가 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또한 그룹 활동을 하는 국내 가수들이 부러웠고 나도 함께하면 잘할 수 있을 거란 상상도 많이 해봤는데 그런 고민과 부러움은 오랜 세월 동안 내 속에 담겨있기만 했고

 이제 그런 자리는 나보다는 내 아이가 더 잘 어울릴 나이가 되었다. 

이번에 보니 정말 내 자녀 또래 아이들이 예선을 보러 왔더라.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속한 세상은,

나에겐 엄마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어서 설사 예선에 통과하여 본선에 진출한다고 해도

아이들의 일과를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다.

 요새는 노래 가사가 정말 안 외워진다. 작년 그 몇 번의 공연들도 참 애를 먹었었다. 

 본선 경연을 위해 노래의 음을 외우고 가사를 외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온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었을까?

 TV 출연해야 하므로 몸매 변화를 줘야 한다고 누가 강요한다면 그 짧은 시간 안에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었을까?


 청춘들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런데 청춘들과 왜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왜 아직도 사춘기를 헤매고 있는지 내가 어리석게 느껴진다. 

 젊었을 때 할 수 있을 때 했어야 했는데 그 미련을 아직 못 버려서 혼자 괴로워한다.

대형 솔로 가수 전국 순회 콘서트 코러스를 두 번이나 제의받았을 때 그때 했었다면 괜찮았을까? 

전국에 그 많던 노래경연대회에 참가해 봤다면 지금은 후회가 없을까? 

지역광고 모델 제의라도 거절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배운 거라고는 피아노 몇 년이 다라서 다른 것을 못 배우고 경험하지 못해서 이렇게 노래에 목을 매나?

......

 다 부질없는 질문들이다.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가수로서의 꿈을 실현하는 목표로 장기간 준비하는 과정을 글로 녹여내려는 것이었는데 갈 길을 잃은 것 같았다. 


 내가 노래를 좋아하지 않고 잘하지 않는다면 굳이 노래를 남길 이유가 없지 않을까. 


 이제는 자녀들을 잘 돌보고 가정에 충실한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라고 체념하던 그때 문자가 왔다. 

 공연 1회 이력이 있으면 신진예술인 예술 활동 증명을 받을 수 있어서 작년 말에 신청해 두었는데 심사가 끝나서 연락이 온 것이다. 

 4월 20일 경연 티브이프로그램 예선에서 떨어졌다고 속상해했는데 4일 후에 신진예술인으로 등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운명의 장난인가. 

 다 포기하려는 순간에 왜 희망을 주는 것일까.


 여하튼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처음 계획대로 천천히 다시 시도해 보려고 한다. 

 내 목소리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존재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신진예술인 자격으로 받을 수 있는 지원도 신청해 보아야 하니까 말이다. 


 일 년 내내 같은 목소리를 유지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냥 그게 나니까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이정표를 남기며 하루하루 살아가 보려 한다. 

 내 목이 편하고 내 몸이 편하고 내가 즐거워할 수 있는 노래들로 차근차근 꾸려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소중한 작업물이 완성되지 않을까. 

그것이 비록 나 혼자만을 위한 결과물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후회 없이 살아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