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산사람이 쓴 오늘의 문장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등지고 혼자 오르는 게 아니다. 이렇게 여기 앉아 있으면 나는 산의 일부가 된다. 때문에 어떤 행동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 미끄러져서도 안 되며 눈사태를 일으켜서도 안 되며 크레바스에 떨어져서도 안 된다. 나는 여기 쌓여 있는 눈과 바위와 구름의 감정을 함께 가지고 있다. 더 이상 철학이 필요 없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죽음까지도 이해하게 되니까.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물론 지금은 혼자 있는 것도 두렵지 않다. 고독이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 라인홀트 메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 김영도 옮김
목요일마다 오지기행이란 TV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깊은 산골 오지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오는 짧은 코너다. 한참을 걸어 간신히 집을 찾아도 주인이 없어 허탕을 치거나 방송을 거절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연출되지 않은 그런 과정도 그만의 재미가 있다.
지난 주던가, 근사한 한옥집을 발견하고 주인장에게 집이 참 멋지다고 말을 붙였는데 뜻밖에도 집 주인이 울음을 참지 못한다. 어려서 너무 가난해, 가난이 사무쳐,번듯한 집을 짓고 싶었다는 사연을 울먹이며 짧게 털어놓는데, 헤아릴 길 없는 사연의 깊이에 PD는 물론 보는 나도 말을 잊었다. 오래 공들여 집을 짓고도 가벼워지지 않는 마음, 그 무거움을 내가 어찌 짐작이나 하랴.
오지기행을 볼 때마다 하루 종일 사람 하나 찾지 않는 적막함을 홀로 견디는 이들에게 놀란다. 내가 부러워하고 꿈꾸지만 살아선 결코 가질 수 없는 의연함이다.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등정하고 낭가파르바트를 단독 등반한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쓴 등반기를 읽으면서 놀랐던 것도 그런 의연함이었다. 동네 뒷산이라도 가는 것처럼 단촐한 차림으로 에베레스트를 혼자 오르며 깊은 고독을 경험한 그는 말한다. " 불가능에서 가능을 찾고 꿈에서 현실을 구하는 일, 그것을 나는 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으리라. 고독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나의 힘을 깨닫지도 못하리라. 그래서 질투가 날 만큼 부러웠지만 금방 고맙고 기뻤다. 나도 그와 같은 인간이니까. 내 안에도 그런 의연함이 아주 조금은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