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se Power with AI
며칠 전 2025년의 마지막 송년회 겸 붉은말의 해를 맞이하는 2026년 신년회를 가졌다. 유치원 방학 시즌인지라 다들 휴가를 떠났다가 돌아와 만난 자리였다. 나도 전날 저녁 늦게서야 한국에 도착해 피곤한 상태였고, 한 친구는 당일 아침 비행기로 와 짐도 채 풀지 못했지만, 간만의 모임이라는 해방감으로 우리는 모임 내내 즐거웠다. 여행 얘기로 시작해 서로의 근황 토크를 신나게 하다 또 결국은 각자의 남편 얘기를 꺼내게 됐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와 결혼해 사는 내 친구 MJ는 오늘 아침 비행기로 도착해 피곤해 죽겠는데 공항에서 집에 가는 길에 남편이 바로 떡국을 끓이라고 했다며 우리에게 울분을 쏟아냈다.
“아니, 새해 됐다고 집 가자마자 떡국 끓이라는 거 있지?! 떡국 좀 안 먹으면 큰일 나니? 냉장고에 뭐뭐 있는지도 모르는데.. 가는 길에 부랴부랴 마트에서 재료 배달시켰잖아.”
결국 MJ는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떡국을 끓여 남편과 아이들을 먹이고 나서야 모임에 나올 수 있었다.
다정한 서울 남자와 사는 나 또한 할 말이 많았다. 내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다정다감한 성격과는 달리 아주 조금의 얼룩과 냄새도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빨래 집착남이었다. 운동선수인 남편은 운동복을 포함한 옷과 수건 등에 굉장히 예민해, 신혼 초 나는 그의 빨래 비위를 맞추다 시어머니께 전화해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러니 며칠 간의 여행을 끝내고 그가 내게 준 빨랫감은 가히 어마어마했다. 색깔 유무에 따라 빨래를 나누고, 울 코스로 세탁할 옷들을 분리하고, 속옷은 따로 빼고, 얼룩이 있는 옷들은 손세탁으로 초벌 빨래하고, 거기에 아이 옷은 또 아이용 빨래 세제로 빨다 보니 나는 무한 세탁 지옥에 빠지게 됐다. 마지막으로 여행지에서 신은 그의 운동화 두 켤레의 세척과 드라이클리닝 할 외투까지 세탁소에 맡기고 나자 빨래 지옥은 겨우 끝이 났다.
“난 빨래하다 지문 닳겠어... 하는 사람 생각은 안 하고 입으면 무조건 턱턱 벗어 놓는다니까! 자기가 해 봤으면 좋겠어 정말”
각자의 애로사항을 호소하던 우리에게 누군가 새로 출시되는 전자제품에 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해주지 않는 가사 노동의 공감을 대신해 주는 AI 가전제품이란 광고를 봤다며, 남편 대신 공감해 준단 말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주부들의 심금을 울리는 멘트랄까... 나 또한 술자리에서 들은 그 말에 관심이 생겨 집에 돌아와 전자제품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자동으로 세탁물의 재질과 양을 분석해 옷감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세탁 모션을 적용하고, 세제와 유연제도 상황에 맞춰 자동 투입하는 세탁기라면 나같이 빨래를 많이 하는 주부라면 빨래의 피로도가 확연히 줄어들 것만 같았다. 또 냉장고는 내부 카메라가 생겨 외출 중에도 집안의 재고 상태를 체크할 수 있고, AI가 식자재의 유효 기한 등도 미리 알려준다고 한다.
살림의 알고리즘에 이렇게 적합한 공감지능이라니! 제품 설명만 보면 하는 사람 생각은 안 하고 빨랫감만 척척 내놓은 남편이나 집에 무슨 재료가 있는지도 모르고 다짜고짜 요리를 내놓으라는 남편보다 AI 가전이 훨씬 나았다. 마음이 혹해 당장이라도 제품을 보러 매장에 달려가고 싶었다. 주부의 마음을 어쩜 이렇게 잘 아는지. 이것이 AI의 마력인가.
이제 사주, 토정도 챗gpt로 보는 시대이다. 물론 나는, 나의 개인정보를 챗gpt에 쉽사리 털어놓지 않는 의심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말이다. 모두가 유튜브 프리미엄에 가입해 음악을 들을 때 혼자 주파수를 직접 맞추는 라디오를 사고, 몇만 원 더 비싸게 주고 사더라도 물건은 백화점에 가서 실물로 보고 사는 젊은 틀딱인 나에게도 이제 AI는 스며들고 있다. 사용자의 감정과 맥락을 이해하는 AI라니, 이 달콤한 매력에 거부할 길이 없지 않나.
2026년, 공감 지능 세탁기로 목돈 쓰고 싶지 않으면 남편에게 빨랫감 작작 내놓으라는 마지막 경고를 해야겠다. 강력한 AI의 마력과 그에 따른 비용 앞에서 인간의 공감력이 얼마나 상승할 수 있을지 한번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