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 한동안 보지 못했던 회사 동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시작은 회사 동기로 만났지만 이제는 서로를 만나기 한참 전의 인생까지 속속들이 아는, 나의 절친인 그녀였다. 어느덧 사무장까지 되고, 작년에 결혼도 해서 그녀는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그녀이기에 그녀가 하루하루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몇 달 만에 만난 그녀는 많이 지쳐 보였다. 요즘 비행 스케줄이 살인적이란 소문은 익히 들어, 많이 고된가 보다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그녀가 해주는 얘기를 듣다 보니 그녀는 몸보다 마음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지난 16년 간 단 한 번의 컴플레인도 받은 적 없는 에이스 중 에이스인 그녀가 최근 한 달 동안 몇 건의 컴플레인을 연속으로 받으며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비스직이라면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특히 고객 응대에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항공사 승무원에게 컴플레인은 여러 의미로 굉장히 치명적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서 컴플레인을 받은 경우라면, 길게는 몇 달 전 일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해 내야 하고, 제대로 상황을 서술하지 못하면 회사 절차에 따라 몇 번이고 보고서를 새로고침하며 시달려야 한다. 차라리 현장에서 ‘너 가만 안 둘 거야!’하는 예고된 컴플레인이라면 그나마 보고서는 수월하게 작성할 수 있지만, 날이 선 상대방의 말과 눈빛 앞에서 받는 감정적 타격도 만만치가 않다. 나의 절친한 동기도 그랬다. 전혀 예상치 못한 컴플레인과 가만 안 둘 거라는(실제 워딩) 예고된 컴플레인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전자의 경우, 실제 컴플레인처럼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도 안 나고(기내에서 아무 언급이 없다면 알 방법이 없다) 운이 없다며 스스로 다독일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다르다.
동기는 비행 중 안쪽 손님이 건네준 트레이를 전달받다, 트레이 위에 비스듬히 걸쳤던 컵에서 옆자리 손님 테이블로 물이 흘렀다고 했다. 그 짧은 순간, 흥건하게 쏟은 게 아니고 조금 흐른 정도고, 다행히도 물이 테이블에만 튀었고, 또 의복 오염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얼른 트레이를 치우고 손님께 양해를 구하며 테이블을 닦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사실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테지만, 이 행동으로 인해 그녀는 40분 동안 승객 앞에 무릎을 꿇고 조아려야 했다.
아주아주 오래 전이야 이런 일이 가능하긴 했다. 내가 신입일 때만 해도 한쪽 팔에 깁스를 한 손님이 비빔밥을 주문한 후 승무원이 비빔밥을 비벼주지 않고 그냥 주고 갔다고 해서 심한 컴플레인을 한 적이 있었다. 심한 컴플레인을 하던 승객은 알고 보니 상용 고객이었고, 그 사실을 안 사무장과 함께 찾아가 비행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승무원의 잘못을 고하며 너그럽게 용서해 주길 바라는 사과를 했다.
런던에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무릎 꿇은 채, 비빔밥을 비벼드리지 못해 죄송하단 말을 하며 느꼈던 모멸감은 십수 년이 지난 아직도 생생하다.
‘이게 왜 내 잘못이야? 왜 사무장은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거지?’하는 마음과 ‘그냥 빌고 끝내자, 컴플레인 레터 받으면 나중에 더 힘들어’하는 마음이 얽히고설켜 나를 옥죄었다. 결국 나는 사과했고, 최선을 다해 비빈 비빔밥을 승객에게 내밀며 컴플레인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다. 사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냥 팔이 불편하니 비빔밥 비비는 걸 도와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까, 승객과 승무원이란 지위로 사람이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스물네 살에 멋모르고 겪은 모멸감을 동기는 마흔이 다 돼서 겪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아무리 사과해도, 물을 다 닦아도, 옷에 오염이 있으면 회사 차원의 변상을 하겠단 말에도 그 손님은 집요하게 승무원을 괴롭혔다. 물이 흘렀는데 그걸 왜 그대로 들고 가냐며 어디가 모자라냐는 말과 함께. 주변 승객들의 그만하라는 야유와 팀장의 이만하면 충분히 조치를 다 했단 말과 착륙을 알리는 기장의 사인으로 동기는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흐를 것 같은 눈물이 가득 고인 그녀의 지친 얼굴을 보니 나까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치만 내가 울면 친구는 더 많이 울겠지, 그래서 뻔하지만 담담한 위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