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없이 상처받을 너에게

by 정짜리

지난 주말, 아이 유치원 친구의 초대를 받아 아이 친구 집에 방문했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엄마들은 엄마끼리 모여 노는 모두 신나는 자리였다. 유치원을 다닌 지 일 년쯤이 되자 아이도, 나도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찾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잘 놀다가 아이들이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서둘러 가보니, 우리 아이가 손으로 귀를 막은 채 화가 나 씩씩거리는 친구와 대치 중이었다.

‘무슨 일이야?’ 묻자, 아이 친구는 자기 엄마에게 달려가 다툰 일로 짜증을 내는데, 우리 아이는 당황함과 두려움이 가득 찬 눈으로 날 보다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친구가 소리를 질러 너무 시끄럽다며, 나에게 오지도 못한 채로 굳어서 엉엉 우는 아이를 보자 마음이 아팠다. 아이를 안고 다른 방에 데려가 다독거리는데 아이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계속 서럽게 울기만 하고, 물을 줘도 마시지 못하고 콜록거리며 뱉어냈다. 아이는 친구가 계속 시끄럽다며 울었다. 나는 아이의 말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아이는 누군가 자기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겁을 먹고 무서웠던 것이다. 사실 방에서 귀를 막으며 당황한 표정의 아이를 보자마자, 친한 친구가 자신에게 화를 낸 것에 아이가 상처받았다는 것을 나는 바로 알았다.


하지만 어떡하겠나, 친구끼리 다투고 상처받고 또 화해하며 상처받은 마음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배워내야 하는 것도 아이의 몫이다. 그래서 아이를 안고 달래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친구끼리도 싸울 수 있어,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기도 해. 너가 한 말에 친구도 속상해서 화를 낸 거야. 그래도 서로 좋아하는 친구니까 기분이 나아지면 화해해 보자’였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는 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다독이며 기다려주자, 아이는 미안해하며 우물쭈물 다가오는 친구에게 초콜릿을 나눠주며 ‘아까 싸워서 미안해’하며 화해를 했다.

평소라면 ‘잘했어, 용기 내서 화해하니까 멋지다!’하고 칭찬해 줬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계속 시렸다. 아이의 상처받은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문득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며 겪을, 수없이 많을 상처와 시련이 걱정됐다.


내게도 수많은 상처의 날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의 남자 친구가 내게 고백을 하며 겪은 친구의 절교와 긴 따돌림의 시간, 스물두 살 지독한 첫사랑의 시련 앞에서 삶이 무너졌던 날들, 신입 승무원 시절 진상 승객 앞에서 사무장과 함께 무릎 꿇고 빌었던 일. 살아오면서 참 많은 시련과 상처를 겪었다. 앞으로도 겪을 테지만, 그래도 처음 상처를 맞닥뜨렸을 때의 그 당혹감과 두려움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나는 생각보다 자존심도 세고 의젓한 편이라 학교에서 친구 문제나 회사에서 겪은 힘든 일을 집에 잘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체로 가족들은 나의 고통(?)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십 대 초반 내가 겪은 지독한 첫 연애에 대해선 모를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일상생활이 안될 정도로 무너졌기 때문에,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도, 집에서 밥을 먹다가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주저앉아 울 정도로 힘들었다. 첫 연애에 실패 후 무너진 어린 딸을 위해 엄마는 반찬을 잔뜩 싸 들고 서울에 왔다. 남자 때문에 그렇게 울고불고하는 딸을 본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나였다면 속이 터졌을 것 같은데... 엄마는 한심해하지도, 그렇게 속상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너덜너덜 종잇장같이 삐쩍 마른 날 위해 꽃게탕을 끓여줬다. 싸 들고 온 반찬과 꽃게탕으로 식탁 가득 차려주고 함께 밥을 먹었다. 무슨 일이든 사람이 밥을 든든히 먹어야 이겨낼 힘이 난다고, 그렇게 나를 위로하고 응원했다. 거의 매주 주말마다 엄마는 밥을 해주러 나에게 왔고, 나는 그렇게 엄마의 밥을 먹으며 상처를 회복했다. 햇볕이 잘 들던 12층의 오피스텔에서 엄마가 차려주던 식탁은 나에게 늘 남아있는 기억의 한 장면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 힘든 하루를 보낸 아이에게 ‘저녁 뭐 먹고 싶어?’ 하니 고민도 없이 우동과 새우튀김이라고 했다. 그래서 4년 연속 블루리본을 받은 양재천 우동 맛집에 아이를 데려가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우동과 새우튀김을 먹이며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을 아이에게 해줬다.


“무슨 일이든 밥을 든든하게 먹으면 힘이 나서 다 이겨낼 수 있어. 배부르게 먹으면 머리가 잘 돌고 기분도 좋아지거든. 알았지?!”


아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까? 몰라도 상관없다. 아이가 상처받을 때마다 나는 엄마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아이를 배불리 먹일 것이다. 내가 엄마에게 위로받은 방식 그대로. 다른 건 엄마는 내게 요리를 해주고 나는 아이에게 맛있는 요리를 사줬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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