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에 관하여

by 정짜리

누군가 나에게 ‘당신이 제일 잘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비난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비난, 질책, 꾸중 이 세 가지는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자주 하는 행동이다. 그중에서도 남편에 대한 비난은 친정엄마도 나무랄 정도로 지나치다.


얼마 전 아이의 옷이 부쩍 늘어나 추가로 아이 서랍장을 새로 샀다. DIY 제품이라 남편에게 부탁해 함께 조립하고 있는데, 포장을 풀자마자 남편이 플라스틱 부품을 밟아 부러뜨리고 말았다. 겁에 질려 내 눈치를 보며 사시나무 떨듯 바들거리는 남편에게 나는 조금의 아량도 없이 무지막지한 비난을 퍼부었다.


“뜯자마자 이걸 이렇게 부신다고? 자기는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이럴 거면 그냥 오빠보단 애랑 같이 만드는 게 낫겠다, 아니 어떻게 이걸 못 봐? 시력이 몇이야? 서랍장 만들게 아니라 일단 안과부터 갔다 와, 어휴 정말!”


옆에서 조립하는 걸 구경하던 아이까지 눈치 볼 정도로 나는 남편을 몰아세웠다. 글을 쓰면서도 반성이 된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남편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아주 작은 실수였는데. 왜 애 앞에서 그렇게까지 남편을 비난했을까, 나는 정말 간장 종지만도 못한 옹졸한 사람인 건가. 내가 남에게 관대함과 배려, 마음의 여유를 바라듯 나도 다른 이들에게 그런 사람이 돼주면 좋을 텐데. 타인에게는 오히려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면서 왜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겐 이렇게 모질게 구는 건지, 늘 반성하고 또 자책한다.


애 앞에서 그렇게 몰아세우면 화가 날 만도 한데 남편은 내색하지 않고 남은 조립을 묵묵히 했다. 같이 받아치지 않고 풀 죽은 채로 일만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낸 게 무색할 만큼 바로 죄책감이 들었다. 서랍장을 무사히 만들고 정리까지 다 하고 나서, 그날 밤 남편에게 아까 너무 심하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남편은 ‘다음엔 화내지 말고 실수해도 좀 봐줘’ 하며 내 손을 잡았다. 남편의 상냥한 태도에 괜히 더 미안해진 나는 ‘오빠가 실수 좀 안 하면 되잖아!’ 하고 툴툴거렸지만 나의 사과를 기꺼이 받아주는 남편에게 정말 고마웠다. 그는 간장 종지 같은 날 품어주는 냉면 사발 같은 남편이었다.


남편의 실수에 누구보다 엄격한 나도 지난여름 어마어마하게 큰 실수를 했다. 골프 연습장에서 스윙 연습을 하겠다고 거리 계산을 안 하고 골프 스틱을 휘두르다 벽에 붙어있던 전면 거울을 깨버린 것이다. 큰 거울이 와장창 깨지며 골프장에서 연습하던 사람들이 다 뛰쳐나올 정도로 대형 사고였다. 당황+민망+두려움이 섞인 채로 골프장 측에 사과하며 남편에게 사고 쳤다고 전화하니, 남편은 자기가 가서 수습할 테니 걱정 말라고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안 다쳤으면 됐어’ 하는 것이다. 남편의 그 따뜻한 한마디가 얼마나 고맙던지, 든든한 내 편이 돼주는 남편에게 그동안 내가 했던 비난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가슴 한편이 더 시렸다.

오빠 내가 이번 일 때문에 찔려서 그러는 건 아닌데, 그동안 오빠가 실수하면 화만 내서 미안해. 이제 나도 너그러운 와이프가 될게. 고마워 흑흑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을 반성하는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너그러운 와이프가 될 기회는 예상보다 금방 찾아왔다. 남편과 평일 점심 데이트를 하고 집에 데려다준 남편이 아파트 주차장을 후진으로 나가고 있을 때였다. 오랜만의 데이트에 기분이 좋았던 나는 멀어지는 차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들렸다. 후진하던 남편이 주차된 택배 트럭의 열린 문짝을 제대로 보지 않고 부딪힌 것이다. 다행히도 택배 아저씨가 괜찮다고 해서 택배 트럭은 큰 문제는 없었지만, 문제는 남편의 차였다. 차 옆면이 심하게 긁힌 것이다. 공교롭게 남편 차는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서 다 수리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사고 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려 하는 순간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차가 망가져서, 또 어이없는 실수를 해서, 누구보다 속상한 건 남편일 테니까.

“여보, 나랑 인사하다 순간 방심했나 보다. 차 망가진 거 하루이틀도 아니고 금방 고칠 수 있을 거야. 너무 속상해하지 마, 사람 안 다쳤으면 됐지.”

부족하긴 해도 나는 그를 위로하고 비난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엄마에게 전화해 남편의 실수에 화내지 않았다고 자랑하자, 올해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며 아주아주 잘 참았다는 엄마의 진심 어린 칭찬도 들었다.


남의 실수에 관대하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실수에는 더 관대하게.


간장 종지 같은 나를 늘 품어주는 남편 곁에서, 나도 조금씩 넓어지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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