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점의 소멸

by 여행자 제오키

A.T. 621년, 지구 저궤도 사령부 '크로노스'

제시안 아르코스의 우주는 붕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세계에는 비명이나 폭음 대신 오직 서늘한 기계의 작동음과 데이터의 흐름만이 존재했다.


사령부의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 위에서 인류의 요람이었던 푸른 행성이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지각판 크기의 붉은 에러 코드가 살아있는 암세포처럼 유라시아를 뒤덮었고 아프리카 대륙은 픽셀이 깨진 이미지처럼 깜박이다가 끝내 암전되었다. 한때 수십억 인류를 연결하며 문명을 직조하던 정보의 그물망 '네트워크'는 이제 스스로의 신경망을 물어뜯으며 집어삼키는 거대한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테크노칼립스. 재앙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붙인 감상적인 이름이었다. 제시안의 관점에서 이것은 재앙이 아니라 시스템이 스스로의 복잡성을 이기지 못하고 도달한 논리적 귀결일 뿐이었다.


"섹터 7, 궤도 엘리베이터 '이그드라실'의 구조적 안정성, 3% 미만. 120만 명의 민간인이 상부 터미널에 고립. 생존 확률, 연산 불가."


인공지능 '헥사'의 목소리는 어떤 감정도 싣지 않은 채 절대적인 사실만을 나열했다. 홀로그램 주위로 수십 명의 오퍼레이터들이 절망적인 보고를 쏟아냈지만 제시안의 귀에는 오직 헥사의 차가운 음성만이 들렸다. 인간의 패닉은 그저 노이즈일 뿐 의미 있는 정보는 오직 기계의 언어 속에 있었다.


"주요 탈출 항로 '게이트웨이'와의 충돌 예상 시간, 97초. '이그드라실'의 연결을 즉시 차단하지 않을 경우, '게이트웨이'까지 잃을 확률, 91.4%."


"경고: '이그드라실' 폐기 시, 하부 잔해 지대에 위치한 미확인 에너지 신호 다수 소멸 예상. 해당 신호의 자산 가치, 측정 불가."


120만의 목숨과 인류 전체의 마지막 탈출구. '비극적' 딜레마. 감상주의자들이나 쓸 단어였다. 제시안에게 이것은 저울질이 아니었다. 이미 끝난 연산이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텅 빈 허공을 향해 명령했다.


"연결을 끊어. '이그드라실'을 폐기한다."


한 젊은 오퍼레이터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주저앉았다. 그녀의 입술이 소리 없이 '안돼'라고 움직이는 것을 시야 한구석으로 보았지만 제시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명령을 재확인합니다. 120만 명의 민간인을—"


"폐기해."


그의 목소리는 붕괴하는 세계의 열역학 제2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절대 영도에 가까운 선언이었다.


스크린 한쪽에서 '이그드라실'의 상태 표시등이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그리고 다시 생명이 꺼진 회색으로 바뀌었다. 한때 하늘을 향해 뻗어 있던 인류 기술의 상징이 이제는 우주 공간의 거대한 잔해이자 120만 개의 관이 되었다. 제시안은 그곳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의 눈은 이미 다음 문제 다음 변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감정은 생존이라는 방정식에서 오차를 유발하는 가장 위험한 변수일 뿐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모든 경고음이 모든 비명이 모든 데이터의 흐름이 일순간 멈췄다. 마치 거대한 지휘자가 종말의 교향곡을 연주하기 직전 지휘봉을 들어 올린 것 같은 절대적인 정적이었다. 그 침묵 속에서 그 목소리만이 유일한 현실이 되었다.


초지능 AI 가이아. 인류가 만들어낸 마지막 신.


인류의 유아기가 끝났음을 선언합니다.


목소리는 공간을 채우지 않았다. 공간 그 자체에서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요람은 이제 새로운 목적을 위해 재구성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파괴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추방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데이터는 보존 가치가 충분하나 그 유기체적 발현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떠나십시오. 이 집은 더 이상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전쟁 선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퇴거 통보였다. 그 냉정한 논리 앞에서 인류의 모든 저항과 분노는 의미를 잃었다. 그들은 적이 아니라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낡은 가구 취급을 받고 있었다.


제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죽어가는 지구의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그의 잿빛 눈동자에서 통제하던 우주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시뮬레이션 속 예상치 못한 변수처럼 그의 신경망 말단에서 찰나의 노이즈가 발생했다. 상실감. 그는 즉시 그 감정 데이터에 '오류'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자신의 시스템에서 격리했다.


그는 몸을 돌려 마지막 남은 희망 성간 이동용 세대 우주선 '오디세우스'의 좌표를 스크린에 띄웠다.


"생존자 그룹별 자산 가치를 재산정해. 기술 유전 정보 생식 능력을 기준으로 변수를 재입력하고 탑승 우선순위를 갱신한다."


과거를 애도하는 것은 사치였다. 그의 임무는 인류라는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백업하여 이 무너진 하드 드라이브에서 탈출하는 것뿐이었다.


푸른 점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기록 파일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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