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왕세자 전하께서 그리하시는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어찌 하나뿐인 아우의 삶을 그토록 끔찍하게 짓밟을 수 있단 말이에요? 어떻게 자기 몫의 인생을 살 수도 없게…….”
에젤드가 걸음을 멈추고 마치 드와이트를 질타하듯 불같이 물었다.
드와이트는 마치 에젤드를 노려보듯 눈을 부릅뜨며 찬바람같이 딱 잘라 말했다.
“광기죠. 사람이 사람을 해하는 일에 합당한 이유가 어디에 있겠어요. 공들여 설명할 가치도 없죠.”
그가 덧붙였다.
“나도 처음에는 궁금했어요. 남들은 모를 시기와 질투 때문인가? 부왕의 애정을 독차지하고 싶어서인가? 왕위 계승권과 관련된 정치적인 이유인가?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추리가 다 덧없다고 여기는 것은, 왕자님을 향한 왕세자 전하의 증오에 까닭이라는 표지를 달기에는 그 정도가 보통을 훨씬 뛰어넘고, 해가 갈수록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근래에 폐하께서 선위에 대한 말씀을 꺼내셨는데, 그 이후로 왕세자께서는 당신이 왕위를 이으면 왕자님의 모든 작위를 박탈하겠다는 협박을 입에 달고 사세요. 왕자로서 출생했기에 마땅히 주어지는 작위들은 천부적으로 부여되는 권리와 같은 것인데, 그것을 박탈하겠다는 말은 지니고 태어난 신분 자체를 부정하고 빼앗아 무엇도 아닌 존재로 끌어내리겠다는 뜻이거든요. 대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나는 그것을 광증이라고밖에는 달리 해석 못 하겠어요.”
“정말 너무합니다.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일들이 숨어 있었으리라고는…….”
격앙되어 말하던 에젤드가 문득 말을 멈추고 드와이트를 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날, 제가 마차에 치여 처음 헤즈메리에 왔던 날, 그날도……?”
드와이트가 고개를 주억였다.
“아이니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왕세자 전하께서 가끔 와서 머무시는 별궁이 있어요. 왕자님께서 이곳으로 유배 오게 되시니, 별궁에 더 자주 드나들며 아우를 감찰하겠다고 폐하께 윤허를 얻으시고는, 별궁에 머무실 때마다 헤즈메리에 찾아와서 횡포를 부리고 가시는 거예요. 왕세자께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보통은 저녁 무렵 어스름할 때쯤 불쑥 들이닥치시는데, 그날은 그것도 싫증이 나셨는지 당신이 오시는 대신 대낮부터 왕자님을 별궁으로 부르셨던 겁니다. 그렇게 또 전하께 술을 먹이고, 매질을 하고, 돌아올 때에는 레스터까지 딸려 보내어 이곳을 감시하도록 하시고…….”
드와이트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던 거였군요.”
에젤드는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땅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지금껏 무척이나 궁금해했으나 대놓고 묻지는 못했던 것을 마침내 물었다.
“레스터는 어떤 사람입니까?”
“레스터…….”
드와이트는 눈을 번뜩이며 턱을 악물었다.
“레스터는 감시자죠. 감시자이며 모사꾼. 어찌 보면 더 비열한 등 뒤의 교살자. 나의 벗 오거스틴의 죽음을 두고 오거스틴 왕세자가 환호를 내지를 때 그 말을 옆에서 들어 주고 있던 사람, 그가 바로 레스터였어요. 어디 듣고 있기만 했나요. 함께 낄낄거리고 맞장구쳐 주고…… 아주 꼴불견이 따로 없었어요. 하급 하인이었던 그가 단 몇 해 만에 왕세자의 시종이라는 지위로 파행적인 승격을 할 수 있었던 비결, 그건 뻔하죠. 강자에게 아첨하고 약자 위에 군림하는 약아빠진 인사이니……. 그도 가끔씩 불시에 찾아와요. 왕자님의 동태를 살피고 왕세자 전하께 보고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에요. 왕자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에는 마치 자신이 왕이라도 된 것마냥 으스대며 이곳 하인들을 다스리려 하죠. 작은 꼬투리 하나라도 잡으면 제 주인처럼 손찌검까지 하며 괴롭혀 대는 탓에, 레스터가 와 있을 때에는 가능하면 왕자님께서 자리를 비우지 않으세요. 왕자님 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드와이트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왕세자 전하께서 오시는 날도 왕자님은 그렇게 하세요. 하인들은 모두 처소로 들여보내시고 왕세자께서 떠나실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요. 당신께서 다 떠맡으시려고, 지엄하신 명으로 분부해 두신 거예요. 왕세자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있으면 하인을 부르는 대신 당신이 온갖 시중을 다 들면서요.”
“어째서 그런 고생을 자처하십니까?”
“보호하시려는 거예요. 그들이 전에 얼마나 모진 학대와 수치를 당했는지 아시니까요. 그 끔찍했던 기억을 애써 뒤로하고 자신을 따라와 준 고마운 사람들이니까. 그러니 행여 왕세자께서 전처럼 그들에게 해코지하실까 하여 아예 눈앞에도 보이지 않게 숨겨 두려 하시는 거죠. 본래 왕세자께서 적대하는 대상은 자신이니, 자기 때문에 애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는 것보다는 나 하나 아프고 모욕스러운 것이 낫다 하시면서요. 왕자님께서 그리도 배려해 주시고 아껴 주시니 하인들도 마음을 다해 그분을 지켜 드리고 싶어 하는 거고요. 때문에 하인들은 왕세자 전하께서 왔다 가시면 한참 동안은 최대한 왕자님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해요. 정말 긴급히 필요로 하시는 것만 챙겨 드리고요. 왕자님께서 바닥까지 무너진 모습을 하인들에게 보여 창피를 당하시지 않게, 그분의 권위와 품위를 지켜 드리고자 그들끼리 암묵적으로 정한 규율 같은 거예요.”
그간의 아리송한 행동들의 이유를 마침내 깨닫게 되자 에젤드는 개운하고 또한 답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물었다.
“선생님은요? 왕세자 전하께서 그리도 무서우신 분인데,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선생님은 줄곧 왕자님 곁에 계셨으니 그분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드와이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왕세자 전하는 다른 누구에게도 이유 없이, 아무 목적 없이 손대시지 않아요. 왕자님의 하인들에게 손찌검을 하고 겁박을 하셨던 이유는 누구도 자신의 일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도록 함이었고, 시종장 어르신께 위해를 가한 것도 그분이 비밀을 폭로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지요. 물론 나 역시도 비밀을 폭로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지만, 내 직책과 내 아버지 때문에라도 나에게 손대기란 쉽지 않을 거예요. 나는 엄밀히 말하면 왕자님의 사람이 아니라 왕실 의료인, 그러니까 폐하의 직속 관리이고, 내 아버지께서는 귀족이 아니시지만 귀족들마저 대하기 어려워할 만큼 폐하의 두터운 신임과 엄호를 받는 폐하의 벗이니까요. 시종장 어르신이 떠나시고 나서는 아버지에 대한 폐하의 애착이 더 깊어지셨어요. 그러니 아무리 왕세자 전하여도 내가 부담스러울 거예요. 시종장 어르신을 상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왕자님께서 무슨 일을 겪으셨는지 자기 눈으로 보았잖아요. 그런 위험성을 끌어안고 구태여 가만히 있는 나를 건드릴 필요가 없죠.”
거기까지 말을 마친 뒤, 드와이트의 눈빛이 돌연 유달리 쓸쓸해졌다. 그는 열없이 잦아든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요, 나는…… 가만히 있는 사람이잖아요. 나는 입을 닫은 목격자. 비겁한 방관자이니까. 나는 앞으로도 그럴 사람인 걸 왕세자께서도 아실 테니.”
“왜 그리 말씀하십니까.”
드와이트의 슬픈 눈빛에 에젤드가 안타까운 듯 말했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왕자님께 벌써 큰일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선생님께서는 왕자님 곁에 머무셨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셨잖아요. 보지는 못했어도, 다 느껴집니다. 사실 오늘…… 왕세자 전하에게서 도망치다가 책들이 가득 찬 방에 들어가 숨게 되었어요. 아마도 선생님의 연구실이었겠지요. 수년간 그 많은 책들을 찾고 읽고 연구하신 것이 다 왕자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따뜻한 위로의 말에도 드와이트의 눈빛은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더욱 날카롭게 날이 선 눈빛으로 에젤드를 보며 그가 물었다.
“오늘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왕세자 전하에게서 도망을 쳤다는 말이에요?”
그는 한 걸음 물러서 다시 한번 에젤드의 행색을 살핀 뒤 말했다.
“뭔가 엄청난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군요. 왕자 전하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 미처 묻지 못했네요. 하지만…….”
드와이트는 말을 멈추고 먼발치를 내다보았다. 숲길이 끝나가는 것을 확인한 그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일단 돌아가서 쉬는 게 좋겠어요. 나도 어서 왕자님께 가 봐야 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음에…….”
“선생님.”
에젤드가 돌연 그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저 돌아가겠습니다.”
“돌아가다니요?”
“헤즈메리 성으로요. 돌아가겠습니다.”
에젤드의 말투는 확고했다. 그녀는 말투만큼이나 굳센 눈빛으로 드와이트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읽어 낸 드와이트는 옅게 미소 지었다. 그녀를 만류할 생각 같은 건 없는 듯, 그는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