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나는 늪에 빠진 사람이었어요."

by 해린C

“그때의 느낌을 어떻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려운 일이에요. 난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방에 감금되었는데, 사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어요. 시종을 통해 들어 보니, 귀빈들이 초청된 자리에서 내가 난동을 피웠다는 거예요. 황당했죠. 하지만 그 황당한 기분조차 오래 가지 못했어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술에 중독되어 버렸으니까.


눈앞에 보이는 기괴한 형체들,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듯한 환청, 밤마다 시럽이란 것을 잔에 가득 채워 와 나를 어르고 달래며 마시게 하던 형님의 능글맞은 웃음, 시중을 들 때마다 침울하게 굳어 있던 하인들의 얼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던 두통과 복통, 구토와 현기증, 더 긁을 곳도 없이 피가 나고 쓰라린 피부염. 나는 왜 이렇게 아프지? 왜 나아지지 않지? 왜 나는 이 궁 밖으로 나갈 수가 없지? 그런 질문들이 매일 머릿속을 떠다녔지만 누구도 제대로 된 답을 해 주지 않았죠.


그런 나날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영원처럼 이어지던 어느 날, 또 한 번 갑작스럽게, 나는 마차에 태워져 어딘가로 보내졌어요. 누군가 말해 줬죠. 나는 레이츠라는 마을로 가게 될 거라고. 내가 왜 그곳으로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그곳이 내 유배지라고 했어요. 유배? 그때에서야 내가 그동안 저지른, 아니 저질렀다고 하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지만, 이미 마차에 실린 몸으로 악을 쓰고 몸부림쳐 봤자 누구도 들어 주는 이가 없었죠. 서럽게 울부짖다가 결국엔 자포자기한 채로 도착한 곳은, 점잖은 집주인 부부와 그 집 바깥어른을 스승님이라 부르는 개구쟁이 소년들이 모여 사는 시끌벅적한 집이었어요. 그때 나는 열한 살. 아직 아버지와 어머니가 필요했던 나이에, 하긴,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어도 되는 나이란 없겠지만, 아직 그분들 슬하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어린 나이에 나는 낯설고 물선 어느 땅에 홀로이 내던져졌어요. 그땐 몰랐죠. 그곳이 나의 두 번째 고향이 될 줄은.


내가 왜 그런 처지가 되어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몇 날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울기만 했어요. 혹은 멍하니 앉아만 있거나 하루 종일 누워 있을 때도 있었죠. 주인 어르신이 식사 때마다 나를 불러도 나가지 않았어요.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아 기운이 다 빠진 채로 방 안에 누워 꼼짝도 않고 있던 날이었는데, 스승님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오셨죠. 침대로 다가와 조용히 말씀하시길, ‘이제는 일어나셔야 합니다. 왕자님의 일을 하셔야지요.’라고 하시더군요. 나의 일이라는 게 뭔지는 몰라도 나는 그분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그때 처음으로 도예 작업실의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여기 공방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넓고 복잡한 작업실이었죠. 내가 나타나자 모든 도제 아이들은 나에게 시선을 집중했지만, 나는 그 시선들이 싫었어요.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기를 원했죠. 그래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공방의 한구석, 작업 도구들을 널어놓는 턱받이 위에 웅크리고 앉아 하루 온종일을 보냈어요. 나의 일을 하라던 스승님께서는 내가 거기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날 그냥 내버려두셨죠. 스승님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를 불러 놓으시고는, 꿈쩍도 않고 있는 나에게 아무 말도 아무 요구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다가 며칠 후에, 그날도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스승님이 물레를 들고 와 내 눈앞에 가져다 놓으셨어요. 그러곤 항상 작업을 하시던 자리를 옮겨 거기에서 도자기를 성형하기 시작하셨죠. 아무런 설명도 없이요. 스승님이 물레를 돌리실 때 나는 그것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 머릿속까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처럼 어지러워도 계속 보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는 거예요. 누군가의 발에 의해 움직이거나 멈출 수밖에 없고, 누군가의 손에 의해 모양이 잡힐 수밖에 없는 점토의 모습이 꼭 나와 같다고 느껴졌거든요. 그즈음,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 형님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을 때여서 유난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나는 물레를 보며 하염없이 울었어요. 한 번 흐른 눈물은 멈출 줄을 몰라서 울고 또 울어도 끝이 없더군요. 꺽꺽거리며 울다가 진이 다 빠져 울 힘도 없어졌을 때, 스승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따뜻한 물 한 잔을 손에 쥐여 주셨어요. 그다음엔 도제 아이들이 하나둘씩 다가와 간식거리를 주더군요. 망설이고 경계하던 아이들이 호기심과 동정심에 이끌려 접근하기 시작한 거예요.


또래 아이들이 주는 관심과 음식 덕분이었는지 조금씩 힘이 나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입은 꾹 닫고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는 식사 시간에도 함께했고요. 음식을 주며 경계심을 풀던 아이들은 이제는 말도 한두 마디씩 걸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아무 대꾸 않던 나 역시 한두 마디씩 짧게나마 대답하기 시작했어요. 대단치 않은 질문에 대단치 않은 답이었지만, 그렇게 한 번 두 번 나를 알은체해 준 것이 결국엔 내 마음을 열어 주고 입을 열어 주어, 깊은 바다에 빠진 듯 숨도 못 쉬던 내가 숨통을 트게 되고, 입 밖으로 내 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까마득했던 목소리도 되찾게 되었죠.


물레 위의 점토를 바라보는 눈도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흙덩이를 다루는 손이 눈에 들어오게 됐다고 해야 맞겠죠. 참 너무도 매정하다, 저렇게 자기 멋대로 주물럭대는 것이 흙덩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지 않나 하던 나의 생각을 바꾼 건 바로 그 손, 흙을 만지는 섬세한 손길이었어요. 행여나 힘을 잘못 주어 한 군데 찌그러지지 않을까, 행여나 굽을 잘못 깎아 수평이 흐트러지지 않을까 하여 공들이는 그 손길이 점점 친절하고 상냥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 손으로, 한때는 바닥에 깔린 알갱이일 뿐이었던 흙을 모아 곱게 걸러 주고, 물을 적셔 부드럽게 해 주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양을 구상해 정성스레 빚어 준다는 것이, 그러기 위해 몸의 감각과 집중력을 아낌없이 쏟는다는 것이 어쩌면 흙덩이에겐 잘된 일이겠구나, 참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채워지고 있던 어떤 순간에, 나는 나도 모르게 물레 위에서 성형되고 있는 도자기에 손을 댔어요. 당연히 도자기는 찌그러졌고, 나는 화들짝 놀라 스승님의 눈치를 보았죠. 하지만 스승님은 인상을 찌푸리지도, 화를 내지도 않으시고, 놀라서 뒤로 감춘 내 손을 잡아끌어 다시 도자기를 만져 보게 하셨어요. 스승님은 곧 발을 굴려 물레를 돌려 주셨고, 이미 모양이 망가진 도자기는 내 손안에서 빙글빙글 돌며 아무렇게나 일그러져 이도 저도 아닌 모양이 되었지만, 나는 그 미끌미끌하고 촉촉한 감촉이 싫지 않아 손을 떼지 않았죠. 스승님은 내게 흙을 느껴 볼 충분한 시간을 주신 후에야 물레를 멈추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제 정말로 왕자님의 일을 시작하시면 되겠습니다.’


스승님은 곧바로 도제 아이 하나를 불러 나에게 일을 가르치도록 시키셨어요. 나는 좋은 바탕흙을 찾아내는 법부터 수비하고 점토를 만드는 법까지, 자잘하게 나누어지는 여러 단계의 작업들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스승님은 내가 하나의 작업을 다 익힐 때까지 각 작업당 도제 한 명씩을 붙여 그들을 통해 배우게 하셨어요. 덕분에 섬세한 작업들을 꼼꼼히 배워 나가는 동시에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죠. 도예는 몸의 힘도 정신의 힘도 많이 요하는 작업이기에 고되기도 했지만, 작업에 흥미를 붙이고 친구들을 사귀면서 나는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어요. 울기만 했던 때가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밝아지고 있었죠.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슬퍼지는 순간이 다시 찾아오기도 했어요. 잊고 있던 절망감이 속에서 불쑥불쑥 올라와 가슴 안에 멍울이 진 것처럼 답답하고, 입을 열면 목구멍에서 불덩이가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그런 순간이요. 도대체 내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누가 나에게 이런 짓을 했지? 왜 나는 그의 장단에 놀아날 수밖에 없지? 그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는 너무나도 괴로웠어요. 괴롭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요. 다른 생각들로 머리를 채워 보려 해도 소용이 없고,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눕게 되는 밤에도 가슴속이 몹시 뜨거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죠. 시간은 빠르게 지나 어느새 소년의 티를 벗고 청년에 가까워지고 있는 나이인데도 그런 비루한 생각에나 빠져 있는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어요. 단 한순간도 나를 위해 멈추어 줄 생각 없이 야속하게 흐르는 시간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고, 언제까지 집이 아닌 곳에서 기약도 없이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를 몰라 하루하루가 암담했죠. 끝날 줄을 모르는 깜깜한 갱도 안을 걷는 것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데 참 신기해요. 사람의 말이라는 것이. 그것이 남은 생을 버티고 설 수 있게 할 만큼의 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요. 2, 3년간 문하들에게서 기본적인 작업을 배우고 난 뒤에는 스승님 곁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는데, 스승님은 과묵한 분이셔서 긴 시간을 붙어 있어도 필요한 말씀 외에는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어요. 그런 분이 하루는 좀 다르셨어요.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마음을 겨우겨우 달래 가며 일하고 있던 날이었는데, 어떤 유복해 보이는 남자가 깨진 도자기 조각을 모아 들고 잔뜩 울상이 되어서 공방을 찾아온 거예요. 그는 자신이 정말 아끼는 그릇이 깨졌는데 복원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스승님은 그릇을 살펴보시더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고 남자를 안심시킨 후 보내 주셨죠. 스승님이 내게 복원 작업을 옆에서 한번 보겠냐고 물어보시기에, 나는 그러겠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며,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어요. 나는 해 보겠다고 했죠. 그릇을 복원하는 것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이었어요. 마치 찢어진 천을 실로 꿰매는 것처럼, 각각의 깨진 조각들에 작은 구멍을 낸 뒤 거기에 끝을 구부린 금속 침을 끼워 넣어 각각의 조각들을 연결해서 고정하는 방식이었는데,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그릇을 복원하는 데에는 꼬박 한나절이 걸렸어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도 스승님께서는 식사도 거르고 복원 작업에 집중하셨죠. 스승님은 이음쇠들을 이어 박아 그릇을 완전히 붙이신 후에 마무리 작업으로는 이음쇠 주변에 꽃과 나무를 그려 넣으셨는데, 그 모양은 마치 흙 위에 피어난 신비한 식물과도 같아서 그 아름다움이 아주 색다르고 묘했어요. 그 모양이 신기해 내가 그릇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피니, 스승님께서 대뜸 물으셨어요.


‘원래의 것에 미련을 두고 보면 망가진 것이고, 변화된 것에 가치를 두고 보면 새로운 것일 테지요. 이 그릇의 주인이 이걸 들고 저에게 온 것은, 새로운 변화에 가치를 두기로 결심했기 때문일 겁니다. 왕자님께서는 어떤 결심을 하시겠습니까?’


그때까지는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어요.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스승님은 진정으로 해 주고픈 말씀을 하시더군요.


‘깨진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화가 나는 일이기도 하고요. 아끼던 그릇 하나만 깨져도 이토록 속이 상한데, 하물며 사람이야, 자신의 인생이 깨졌다고 느낄 때 그 속이 오죽 문드러지겠습니까. 그렇지만 깨진 조각을 바라만 보고 있으면 슬픔은 가시지 않을 겁니다. 기분을 바꾸려면 복원 이후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깨져 본 적이 없는 도자기에는 이러한 독특함이 없습니다. 물론 없었으면 더 좋았을 독특함일지도 모르지요. 전에 없던 이음쇠가 흠처럼 보여 이따금 가슴이 저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왕 벌어진 일, 내 마음에 구멍을 뚫고 내 기분을 구부리기보다는 도자기에 구멍을 뚫고 쇠를 구부리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마모되어 본 적은 있어도 깨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갖지 못한 독특함이 왕자님께는 있습니다. 그 독특함은 새롭게 얻은 기질일 수도 있고, 새로운 가치관일 수도 있고, 새로운 습관이거나, 새로운 기호나 기술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흠으로만 보지는 마십시오. 원래대로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땠을까 상상하는 데에 너무 많은 힘을 쏟지도 마십시오. 모양이 변했다 해도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치 창이 열리는 기분이었달까요. 창의 덧문이 열려 빛이 들어오고 창문이 열려 바람이 들어오는 것처럼 막혔던 가슴 한구석이 상쾌해졌어요. 맞아요.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제각기 흩어지던 감정의 바람결이 한데 모여 하나의 방향으로 불어 갈 수 있게 된 것이.


레이츠를 떠나던 날도 그랬어요. 어느새 내 키보다 작아지신 그 무뚝뚝한 어르신이 그날은 나를 꼭 안아 주셨죠. 그러고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나를 보며 말씀하시길,


‘왕자님. 누군가 왕자님을 힘으로 제압한다 해도, 마음만큼은 제압당하지 마십시오. 자기만의 마음과 생각은 속 깊이 숨겨진 것이라 남이 쉽게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되지요. 간혹 속이 무르고 약해져 한 귀퉁이 부서지더라도, 다시 메우십시오. 그러려면 노력하셔야 합니다. 왕자님의 일을 하십시오. 생활을 해 나가십시오. 그러면 다 괜찮습니다.’라고 하셨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스승님이 해 주셨던 그 말들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더욱 절실히 느껴지더군요. 온갖 잡다하고 어두운 생각들이 나를 절망의 구덩이 속으로 끈질기게 잡아당길 때면, 바로 그때 들었던 그 말이 나를 잡아 주었어요. 밑으로 밑으로 한없이 가라앉지 않게, 딱 거기에서 생각을 멈추고 나의 일을 할 수 있게, 반복적인 슬픔이 닥쳐도 그 슬픔 안에 영원처럼 갇혀 있지는 않게 말이에요.


나는 늪에 빠진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나에게는 발 딛고 설 수 있는 단단한 땅이 생겼어요. 레이츠가 나에게는 그런 곳이에요. 내가 옮겨 심어져 북돋워진 곳. 나의 또 다른 고향. 그곳에는 나의 두 번째 아버지가 계시고, 내 마음의 형제들이 있죠. 지금의 내 모습은 그들이 지켜 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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