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말이 없었다. 안장 위에 앉은 에젤드도, 그 옆을 따라 걷는 에드윈도 그러했다. 조금 전에 선물을 주고받으며 좋아했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서먹한 분위기만이 새하얀 숲길 전체에 감돌았다. 거듭 들려오는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없었더라면 지나친 정적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에젤드는 에드윈을 내려다보았다. 특별히 볼 만한 것도 없는 창백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잠히 걷는 그의 눈가에 퍼렇게 오른 멍 자국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뼈아픈 시선은 조금 더 위로 향해 짙게 휘어 올라간 그의 속눈썹으로 옮겨 가고, 이윽고 눈썹에까지 가 머물렀다. 그 눈길이 왜 어느 순간 그토록 쓸쓸하고 처량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토록 가까이 있는 사람을 까맣게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바라보게 하는 그런 마음을,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을 한없이 그리워하는 눈빛으로 보게 만드는 어떤 무거운 심정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걸까, 에젤드는 에드윈에게서 눈길을 거두고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어디가 불편한 것인지 울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말 위에서 몸을 한들거리던 그녀는 문득 말을 멈추어 세웠다.
“왜…… 그래요?”
숲길 중간쯤에서 에젤드가 말에서 내려 버리자 에드윈이 물었다.
고삐를 잡고 선 에젤드가 답했다.
“걷고 싶습니다.”
속삭임보다도 작게 입안으로 삼켜 넣은 그다음 말은 에드윈이 들었을 리 없었다.
“같이…….”
너무나 소소하여 바람도 훔쳐 가지 못한 작은 바람은 혼자서만 간직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행여 삼켜 낸 말이 흘러나올까 걱정이라도 하는 듯 입술을 꼭 다물었다.
“내가 할게요. 이리 줘요.”
아무것도 모르는 에드윈은 단지 고삐를 넘겨받고 에젤드를 옆에 세울 뿐이었다.
겨울바람에 펄럭이는 파란 망토의 끝자락이 자꾸만 곁에 있는 에드윈의 다리를 건드렸다. 그 망토 자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걷는 에드윈의 입술이 슬쩍 미소를 품었지만, 입술과는 영 신호가 맞지 않았는지 그의 눈망울은 방금 전 에젤드의 눈빛과 놀라우리만큼 같은 색으로 처연히 물들고 있었다. 같이 걷고 싶다며 굳이 말에서 내려 놓고는 아무 말 못 하는 에젤드도 그다지 다를 것은 없었다.
어깨를 시원스럽게 펼 수도 없을 만큼 불편한 공기로 두 사람을 에워싸던 이상한 침묵은, 숲길 끝에 이르러서야 겨우 용기를 낸 듯한 에드윈의 한 마디로 마침내 흔적을 지우며 흩어져 날렸다.
“이제 다음엔, 언제 와요?”
그에게서 처음 받아 보는 질문에 조금은 당황한 듯한 에젤드가 얼버무리며 답했다.
“아마도 금요일쯤……, 그때쯤 올 것 같습니다.”
“아, 사흘이나…….”
에드윈이 아랫입술을 비쭉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내일 오면 안 돼요?”
대뜸 던진 그의 질문이 그녀를 더욱 당황하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에젤드는 입을 벌린 채로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본 에드윈의 얼굴도 덩달아 놀라움에 황망해졌다.
“아, 아니에요.”
에드윈은 연거푸 고개를 저으며 거칠 것 없이 튀어나온 말을 수습하려 애썼다.
“실수예요. 실수로 한 말이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아버지가 목요일에 다시 배를 타셔서요. 이번엔 워낙 짧게 계시니 떠나시기 전까지는 계속 집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이 실수라 칭한 그것을 함께 수습해 주려는 듯 에젤드가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하자, 에드윈은 더욱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래요. 그래야죠.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닌데…….”
“오후에 와도 됩니까?”
불쑥 꺼낸 에젤드의 물음에 에드윈이 말을 멈추고 멀건 눈을 크게 떴다.
“목요일 아침에 아버지가 떠나시고 나면 오후에 나올 수 있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제안 때문인지 에드윈의 얼굴에 당혹감이 짙어지자, 이번엔 오히려 에젤드가 주눅 든 기색으로 흐리게 말했다.
“다른 계획이 있으신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요.”
“없어요, 다른 계획.”
누가 채 가기라도 하는 듯 에드윈이 그녀의 말꼬리를 속히 붙잡아 답했다.
그는 금세 달가워진 얼굴로 에젤드를 보고 있었다. 연신 실룩이며 설쳐 대는 입꼬리를 어쩌지도 못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웃음은 나는지.
“위험하니까 그렇죠. 해 질 때까지 성에 있으면 위험하니까. 그것만 아니면 괜찮아요. 나 아무 계획도 없어요 목요일에. 그러니까 오후에 와요. 목요일 오후에.”
타닥거리는 장작 소리를 멜로디 삼아 즐기며 드와이트가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시선은 집중하여 읽고 있는 책에 고정한 채, 그는 진정 음악이라도 듣고 있는 듯 꼬아 올린 다리를 까딱거렸다.
문을 여닫는 소리에 드와이트는 고개를 돌렸다. 응접실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오는 에드윈을 본 그는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에젤드는 잘 갔습니까?”
“잘 갔지.”
말소리를 아무렇게나 흩트리며 답한 에드윈은 무겁게 발을 끌며 걸어와 드와이트의 옆 기다란 안락의자에 벌렁 누워 버렸다. 드와이트는 고개를 갸웃하며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고, 한쪽 팔로 두 눈을 가린 채 누워 있는 에드윈을 향해 물었다.
“어디 안 좋으십니까?”
“아니네.”
“피곤해서 그러십니까?”
“안 피곤해. 괜찮네.”
“오늘 작업은 끝난 겁니까?”
“작업은 무슨 작업. 에젤드도 없는데…….”
탁. 드와이트는 책을 덮었다. 그토록 몰입하여 읽던 책마저 테이블 위에 툭 던지듯 올려 두고, 그는 자못 진지해진 얼굴로 팔짱을 꼈다.
“에젤드가 없어서 작업을 못하신다는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되겠습니까?”
드와이트의 묵직한 목소리에 에드윈은 눈을 가렸던 팔을 이마 위로 올리고 그를 흘끔 쳐다보며 왜인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으……렇지. 에젤드가 그림을 그려 줘야 나도 또 새 도자기를 만들지 않겠나.”
“전하.”
드와이트가 어딘지 근엄한 음성을 내뱉자 뭔가 찔리는 것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에드윈이 슬쩍 눈치를 보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드와이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이렇게 솔직하지 않으신 전하는 처음 보는 듯합니다.”
“솔직하지 않다니?”
퍽 자신감 있어 보이는 물음과는 달리 쑥 잦아든 음성으로 에드윈이 되물었다.
“전하께선 아닌데 그런 척하고 그런데 아닌 척하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으신 분인 거 모르십니까? 저는 스스로도 잘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요.”
대꾸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에드윈은 그저 멀뚱멀뚱 드와이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드와이트는 단언했다.
“전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허물어진 마음을 일으키고 또 일으키기 위해 자기 속을 들여다보고 파악하는 데에는 도가 트신 분이니까요.”
“무슨…….”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말씀은 마십시오. 모르실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씀도 마십시오.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에드윈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어 놓은 드와이트는 한참을 그렇게 팔짱을 낀 채로 그를 빤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물었다.
“에젤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에드윈은 그의 집념에 체념한 듯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수그렸다. 여간 어두운 것이 아닌 낯빛에는 깊은 시름이 서려 있었다.
드와이트는 다소 억셌던 말투를 누그리고 다시 한번 물었다.
“제 질문이 전하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도 솔직해지셔야 할 문제입니다. 결국은 그러실 수밖에 없을 거고요.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답해 보십시오. 에젤드는 전하께 어떤 사람입니까?”
“에젤드는…….”
에드윈은 눈을 들어 드와이트를 보았다. 그의 눈에 그렁하게 눈물이 찼다.
“에젤드는, 겨울 산 위에 뜬 별과 같지. 시린 겨울 산 위에 뜬 총총한 별.”
드와이트가 원했던 것은 말 그대로 숨김없이 참된 표현이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에둘러 말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명확히 이해한 그는 많은 의미가 함의된 진실한 대답에 비로소 마음을 놓은 듯 웃음을 보였다.
“재미있네요.”
솔직한 마음을 보이면 우려를 표하지 않을까, 그 마음 접으라며 면박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면 그건 에드윈의 기우였다. 의외의 반응에 당혹한 것은 도리어 에드윈이었다.
드와이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음유 시인들이 아름다움에 대해 노래할 때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해도 아니고, 달도 아닌, 별입니다. 그들은 별의 아름다움을 칭송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보석보다도 영롱히 빛나며, 밤하늘을 가득 채워 반짝이고, 손에 넣을 수도 없이 귀하니,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꾸미기에 손색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그들이 별을 노래하는 이유는…….”
드와이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것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멍해진 에드윈이 그의 마지막 말을 곱씹는 사이, 드와이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직 들을 말이 많은 에드윈은 다급히 물었다.
“어딜 가는 건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드와이트가 에드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는 결정을 내려 드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하께 거울을 보여 드린 것뿐이지요. 이제 제대로 보셨으니, 답은 전하께서 잘 찾으실 겁니다. 그리고 어떤 답을 찾으시든, 저는 전하의 편에 있겠습니다.”
힘을 실어 진중하게 말한 뒤 다시금 싱긋하고 웃어 보이는 그였다.
“잠시 계십시오. 저는 시린 겨울 산을 싸매 줄 붕대를 가지러 가야 해서요.”
농담까지 던질 만큼 마음이 가벼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드와이트가 응접실을 나선 이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에드윈의 얼굴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가벼워지기는커녕 더욱 무겁게 가라앉을 뿐. 에드윈은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푹 꺾었다. 오히려 더 심란해지기만 한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마른 손으로 아무리 얼굴을 문질러 봐도 혼란스러운 생각과 복잡한 감정들은 도저히 씻겨 나갈 줄을 몰랐다. 매우도 처절한 괴로움의 신음들만이 그곳에 남아 응접실 안을 번잡하게 휘젓고 돌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