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유럽 상류사회에서는 썩은 이빨과 치통이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다고 하더군요. 귀부인들이 값비싼 홍차에 역시나 비싸고 귀한 설탕을 왕창 부어서 과시하듯 마셨던 탓에 그랬다는데, 당시의 상류층 차문화를 보면 전동칫솔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치아가 남아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사실 커피와 차, 설탕의 역사는 치통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피와 눈물의 역사입니다. 향긋한 커피와 차를 얻기 위해서는 식민지의 아녀자들이 밤낮으로 땅을 가꾸고 열매와 잎을 수확해야 했고, 사탕수수밭에서는 노예로 팔려온 자들의 땀과 피를 짜내서 달콤한 가루를 얻어냈지요. 그 폭력적이고 진부한 유행이 벌써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오는 것입니다.
아직 제 유치가 남아있던 1980년대 중후반은 그 유행이 정점에 달했던 시대였습니다. 어디에나 설탕이 듬뿍 들어있었지요. 공기에서도 단내가 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매일 고기반찬을 먹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습니다만 누구든 설탕은 마음껏 먹을 수 있었지요. 그래서인지 제 치아만큼은 유럽의 귀부인들과 비슷하게 고급한 유행을 따르게 됐습니다.
탕약같은 커피를 설탕없이 마시는 독한 것(?)들은 대한민국에 유독 많다고 합니다. 유럽인들이 즐기는 에스프레소나 카페오레에는 설탕이 많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방과 후 티 타임>이라는 제목을 지어두고 계속 두서없는 이야기만 늘어놨습니다. 제목을 그렇게 정한 이유는 제 아이들과 차를 나누던 경험을 여러분들께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
적어도 아이들은 설탕의 유행에서 벗어났으면 하고 바람 합니다. 사반세기(제법 아저씨 다운 표현이지만...) 동안 제로콜라도 나오고 올리고당과 자일로스 등 설탕의 달콤함은 느낄 수 있지만 부정적 영향은 줄이는 대체품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달콤한 것에 절여진 입맛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과자와 케이크를 빼앗을 수 있는 모진 부모는 못됐지만, 적어도 설탕이 물보다 많은 음료를 마시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것도 선의를 가장한 억압일지도 모릅니다. 부모의 종교를 아이가 따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아이는 내심 성당보다는 절에 가고 싶어 할지도 모릅니다. 어여쁜 짝꿍을 따라 교회에 가고 싶어 할지도 모르는 거죠. 뭐 종교야 더 커서 저 좋을 대로 해도 되겠지만, 몸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차를 좋아하냐고요?
호랑이 없는 굴에서는 여우가 왕입니다요.(이것도 꽤 오래된 유행어네요...)
콜라와 주스가 없는 집에서 아이들은 차를 찾게 됩니다.
45개월 인생의 차 사랑. 둘째 찌깐양은 차를 좋아합니다. 과자를 먹으려면 차를 마셔야 하거든요.
바둑과 차는 벌써 수십세기 동안 짝꿍이 아닐까요? 아들은... 수가 안서는지 울고 있습니다만...
케익 참 맛있지요... 설탕없는 차로 이를 씻어내는... 그렇게 생각하면 부담감이 조금 줄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