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하얀 등대(2)

by 이민영

10년이 지났다. 죽은 7명의 가족 중 네 가족이 이사를 갔다. 하나는 스스로 죽었고, 하나는 차에 치였다. 남은 건 하나였다. 자식도 없이 죽은 이준혁의 아내, 채나리. 하나였다. 3년 전 김철의 아내 황예원과 아들 김준서가 외가가 있는 경산으로 이사한 후, 채나리, 아니 나리씨는 혼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사실 꽤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남은 이들과 대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피하고 따돌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위로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과 관련된 모든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들은 끼지 못했다. 낮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는 카페의 웃음소리에도, 초저녁에 마을 공원에서 다 같이 하는 운동모임에도, 밤늦게 선술집에서 떠드는 푸념에도. 그리고 그들은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돈도, 명예도, 그저 겉치레의 위로조차도.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이 가볍게 짓는 웃음이 그들에게 주어진 전부였지만, 그 웃음 속에 감춰진 어색함이 그들을 더욱 불편하게 했다. 그들은 떠나기로 했다. 좁은 사회에서 유배된 삶은 버틸 수 없는 것이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타지로 나가는 것이었다. 친정으로 가면 되었다. 돈벌이도 마땅치 않고, 친정에서 마침 오라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되었다.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방법으로 넷이 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그동안 해주지 않았던 것들을 해주었다. 돈도, 명예도, 그리고 나름 진심이 담긴 위로도. 그들이 이 마을에서 정말 간절하게 원했던 것들을 이 마을을 나간다고 하니 베풀어주었다.


차에 치여 죽은 박상철의 아내 송유리는 특별한 경우였다. 원래 그녀도 넷의 경우와 같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트럭에 치였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비극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죄책감을 그 트럭 기사에게 쏟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들이 그들을 배척한 것이 그의 책임인 것처럼, 그에게 온갖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죽었다. 다행히 유족은 없었다. 그는 마을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스스로 죽은 이규종의 아내 최은영은 마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친정이 없었고 자식도 없었다. 그녀가 머물 곳은 이 마을뿐이었고, 그녀를 위로하는 것은 남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남은 이들은 점점 떠나갔다. 결정적으로 그녀와 가장 친했던 손혁진의 가족, 그러니까 손혁진의 아내 김예원과 손혁진의 딸 손수지가 대구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래서 죽었다. 밧줄로 목을 둘러서.


손혁진의 가족을 탓하면 됐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니 말의 무게도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손혁진의 가족을 서둘러 보낸 것이 마을 사람들이었기에 탓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로를 헐뜯었다. 험담했다. 살벌한 말들이 서로의 심장을 찔렀다. 고함과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몇몇 이들은 환송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난리가 났다. 몸싸움도 서슴지 않았다. 그동안 응어리진 마을의 갈등이 모조리 터져 나왔다. 한동안 마을은 우범지대였다. 서로는 서로를 향한 증오를 알아버렸다. 마을은 해체되었다. 몇몇은 경산으로 갔다. 몇몇은 대구로 갔다. 몇몇은 부산으로 갔다. 김철의 가족, 그러니까 김철의 아내 조서아와 김철의 아들 김도윤, 그리고 김철의 딸 김다은이 떠난 것도 이즈음이었다. 마을은 완전히 망가졌다.

떠난 일가는 모두 26가구였고, 버려진 집들은 모두 철거되었다. 집이 워낙 낡기도 했고, 시골 마을이라 들어올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을이 우범지대가 되었을 때 크게 3개의 파로 나뉘었는데 마을의 대처를 긍정한 쪽인 양규식 일가와 마을의 대처를 비판한 쪽인 김정훈 일가, 그리고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강영준 일가가 파벌들의 수장이었다. 처음에는 강영준 일가 쪽에서 관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양규식 일가에 뛰어들고, 김정훈 일가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가에서 극단적인 주장들을 하였다. 반대파들을 모두 경찰에 잡혀가게 해야 한다고도 하였고, 사람 취급을 해선 안 된다고도 하였다. 무게추가 한쪽으로 쏠리면 급격히 내려앉는 시소같이 중립적으로 보였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극단주의자가 되었다. 강영준 일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결국 다 같이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다. 어느 한쪽에 속하면 우리도 그 멸망에 휩쓸려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강영준은 가족들의 처신을 엄하게 주의했다. 결국 양규식 일가와 김정훈 일가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파벌을 이룬 게 언제였냐는 듯이 파벌에 속한 일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빠르게 마을을 빠져나갔다.

100명 넘게 살던 마을에는 이제 20명밖에 남지 않았다. 72세 박영덕과 그의 아내 68세 김순자, 그리고 그들의 아들 46세 박영철과 딸 44세 박연진이 일가를 이루며 살고 있고, 그들의 친척인 55세 김진이 혼자 살고 있다. 77세 강영준과 그의 아내 60세 이미자, 강영준의 아들 38세 강건호와 그의 아내 37세 정지은, 그리고 강영준의 딸 35세 강다희와 그의 남편 32세 하동윤이 일가를 이루며 살고 있고, 그들의 친척인 32세 박채원과 그녀의 아들 5세 강민재가 일가를 이루어 살고 있다. 강영준의 먼 친척인 51세 강세준과 그의 아내 49세 김지은, 그리고 강세준의 아들 19세 강준과 딸 16세 강별이 또한 일가를 이루어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미자의 먼 친척인 70세 이율이 혼자 살고 있다. 나리씨는 40세고, 나는 32세이다.

박영덕의 일가와 김진은 12월 11일에 대구로 이사 간다고 했고, 강영준의 또 다른 아들인 32세 강진호와 그의 아내 30세 김세희, 그리고 강진호의 딸 4세 강지효가 이사 온다고 했다. 강지호 일가는 박영덕 일가의 집을 쓰기로 했고, 김진의 집은 헐릴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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