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어요
난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어요.
드넓은 세상을 살아가며 내가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일을 모두 이루어 보리라.
인생이라는 무대 위, 내 삶을 지나쳐가는 관객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위해 정말 부단히도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주연도 감독도 연출도 모두 ‘나’. 삶이란 ‘나’를 위한 무대. ‘나’를 빛내기 위한 연극을 쓰기 위해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각본도 짜보고 연극에 함께할 배우들도 모집해 보기도 하고, 제 연극에 찾아와준 배우들과 관객들에겐 제 가치관을 들이대 가며, 그들이 제가 쓴 시나리오에 공감해 줄 것을 강요했죠. 그러나 제 기대와는 달리, 삶을 지나쳐가는 그 누구도 제 연극에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제 삶에 담긴 메시지 보다는 연극의 화려함만을 가지고 저를 평가했습니다.
사실, 저의 무대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어요. 저는 저의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가 빛이 날 걸로 생각했지만, 어두운 무대 위의 빛은 스포트라이트뿐, 스포트라이트는 아무한테나 비치는 것이 아니었죠.
비어 있는 무대에서 일반인이 아무리 소리치고 피땀을 흘리며 노력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주인공을 따라 비치는 것.
저는 세상의 주연이 저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조명 한번조차 받지 못하는 조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제 어떤 노력도 무대 위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을뿐더러, 제 이야기는 관객에게 하나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자, 저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주인공이 아닌데,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아무도 기억해 주지 못하는 어디에나 있는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드높았던 자의식과 높아진 마음들이 무너지자 저에게는 그제야 주위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무대 위 수많은 조연들의 탄식과 애달픈 신음 소리. 감독도 연출도, 주연도 아닌 제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라곤 없어 보였죠.
나를 뽐내기 위한 자랑을 그만두고 낙심과 실망 가운데서, 낮아진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본 저는, 그제야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가 누구에게로 향해 있는지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울부짖는 조연들 사이로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과 함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조연을 찾는 주인공.
끝내 저의 각본과 연출과 대사들은 전부 버리고 그 주연의 곁에 섰을 때, 저는 드디어 무대 위의 빛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 연극이 아니라 그 주인공의 연극이었지만, 사람들은 조연에 불과한 저의 대사 하나하나에 감동하기 시작했어요. 어두운 무대 속, 빛을 받는 주인공의 발걸음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추어 가는 모든 순간.
때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던 저의 대사들은 모두 복선이 되어 주인공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고 제가 흘리는 땀방울들은 관객들에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비록 제가 저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연의 곁에 있을 때, 저는 저로서 온전한 빛을 발할 수 있었죠.
비록 주연이 아닌, 조연에 불과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저는 오히려 행복합니다. 연출을 하지 않아도 되고 각본을 짜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내려놓아 마음이 편해요. 그저 주인공인 당신의 시선을 따라, 당신의 호흡과 대사에 따라. 제 발걸음을 맞추는 것에 집중합니다.
이윽고 주연인 당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조연의 위치에 이르렀을 때, 무대는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주연인 당신이 가장 아름다운 빛을 받음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마무리되겠죠. 관객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훌륭한 이야기로 기억하며 여운을 가진 채 박수를 보낼 것이고 우리는 함께 무대 위에서 손을 잡고, 기쁨의 커튼콜을 치를 겁니다.
그 영광의 순간을 고대하며, 당신을 향한 사랑을 담아, 나는 오늘도 당신의 곁을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