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해
“아빠 왔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아들~~ 잘 지냈지?? 아빠가 우리 아들 좋아하는 치킨 사 왔다~!”
“와!! 아빠 최고예요!!!”
늦은 겨울밤. 아버지가 가져온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맛있는 치킨 내음이 방안을 가득 채우자 까르륵, 아이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초등학생 아이와 아버지, 두 사람이 살기에는 좁지는 않을까 싶은 작은 방이었지만, 두 사람이 풍기는 온화한 분위기는 바깥에서 몰아치는 추위를 막기엔 충분해 보였다. 늦은 시간까지 혼자서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렸을 아이는, 아버지의 손에서 치킨을 받아 신나게 열어보기 시작했고 아이의 아버지는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수저를 놓았다.
“아들. 혼자서 집 보는 거 외롭진 않았어?”
“응? 조금 외롭긴 했는데 괜찮았어!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같이 놀다가 들어와서~”
친구들과 어울린 시간이 즐거웠는지 한 손에는 치킨을 들고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아이. 분명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그 모습을 보는 아이의 아버지는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투병 끝에 아내를 여의고, 남은 것이라곤 아직은 엄마의 사랑이 한참 필요한 어린 핏덩이와 막대한 병원비로 인한 빚더미.
한참 가족의 미래를 계획해야 할 시기였는데, 모아놓은 돈은 없이 빚만 잔뜩이었으니, 하다못해 이 아이의 미래에까지 이 빚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이의 아버지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말아야 했다.
빚을 갚는 것이 우선이였기에,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을 처분하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여, 매일 늦은 시간까지 종일 아이를 위해 달려온 아버지였지만, 그럼에도 혼자 집에 머물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고 마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었다.
막상 아이는 좋은 친구들과 즐겁게 논 기억을 이야기 했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사 오신 맛있는 치킨으로 인해 행복하게 웃고 있었지만, 아이의 아버지에겐 늘 해주지 못한 것이 먼저 떠올랐다. 그렇게 속상한 마음을 삭이고 있으려니, 문득 아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물어왔다.
“아빠. 아빠는 어떻게 해서 매번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사 오실 수 있어요?”
“음…. 글쎄? 아빠가 온종일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요? 그럼 그렇게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저도 저보다 어려운 친구들에게 매일 치킨을 사주고 아빠에게도 치킨을 사줄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친 얼굴로 늘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 들고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렇게나 멋져 보였던 것일까? 더군다나 자신의 상황 역시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그 대견한 말이 아버지의 마음을 울렸다.
어려운 와중에도 이렇게나 바르게 자라주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한지. 아이의 아버지는 대견한 마음을 담아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말을 이었다.
“너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아빠에게 치킨을 사주는 삶을 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까진 아니란다. 너도 어른이 되면 얼마든지 이렇게 될 수 있어. 오히려 그 마음을 어른이 될 때까지 지키는 일이 어려운 거란다? 일단은 너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예를 들면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다거나?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한다거나 말이야.”
그러나 어리디어린 아이에겐 아버지의 이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선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의 2배는 더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바깥에서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치킨을 사 들고 멋지게 귀가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비하면 늘 보호받기만 하는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였다. 당장 친구들에게 치킨은커녕 컵볶이 하나 사주지 못하는 아이인데, 멋진 모습이 되기보단 멋진 마음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아버지의 말이 와닿을 순 없겠지.
무엇보다 아버지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공부라는 것도 아이에겐 너무나 높은 벽이었다. 휴일엔 아버지가 공부를 봐주신다곤 하지만, 아직은 아버지와 함께 놀러 가는 것이 좋은 나이. 어린 학생이 학교에서 혼자 선생님의 수업만 듣고 학업을 꾸준히 이어가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어른이 되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어느 것 하나 결과가 빠르게 나오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처음 며칠 동안은, 선생님의 말씀도 잘 듣고 숙제도 열심히 해보려 했던 아이였지만, 당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치킨을 사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인 아이에겐 공부도 숙제도 아이가 원하는 목표와는 관련은 없어 보였다.
‘정말 아빠의 말대로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나도 아빠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선 너무나 긴 시간이 필요한걸? 만약에…. 아빠도 엄마처럼 내가 치킨을 사드리기 전에 내 곁을 떠나시면 어떻게 해? 치킨을 사려면 돈이 필요한 거잖아? 중요한 건 돈이지 공부가 아닌 거 같아. 어쩌면 돈만 있으면 나도 어른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끝내 오랜 시간 고심하던 아이가 내린 결론은 아이의 아버지가 주고자 했던 교훈과는 많이 엇나간 것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를 고민을 하던 아이의 시야에 문방구에서 게임을 하는 동네 친구들의 모습이 들어온 것은 어쩌면 필연이겠지. 아케이드 게임기 위에 지갑을 올려놓고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분명 매일같이 보던 장면이었지만, 어째서 이날따라 그 지갑이 그렇게 눈에 띄었는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목적은 사라지고, 돈을 얻어야 한다는 목표만 남은 아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땐, 아이의 손엔 이미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지갑이 쥐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날 밤. 목표를 달성한 아이는 처음 스스로의 힘으로(?) 치킨을 주문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주문하는 치킨인 탓에 어떻게 주문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정작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아이의 마음에는 어떤 기쁨도 성취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집에 오면서부터 느껴진 기분 나쁜 두근거림과 울렁임이 끊이지 않아 평소에는 그토록 달콤하게만 느껴졌던 그 치킨의 향조차도 반갑지 않게만 느껴졌다. 아이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지독한 죄책감이라는 감정이었다.
이윽고 집에 돌아온 아이의 아버지는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치킨과 창백한 표정으로 질려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곤 다그쳐 묻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치킨이야?? 이거 너가 산 거니 아들?”
“...네.”
“너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이걸 어떻게 산 거야?”
“...”
“아빠는 지금 화가 난 게 아니야. 너에게 묻고 있는 거란다. 아빠에게 사실대로 말해 주지 않겠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던 아이는 이윽고 모든 것을 자초지종 설명하기 시작했다.
“치킨을 사고 싶은데…. 그래서 아빠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나 돈이 없어서…. 그래서 문방구에서 지갑을 가져왔어요…. 그래도 난 아빠에게 치킨을 사드리고 싶어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의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강하게 말했다.
“아들. 아빠가 치킨을 사주겠다는 너의 말에 기뻐했던 것은, 단지 아빠가 치킨을 좋아해서도 아니고 치킨을 사 먹을 돈이 없기 때문도 아니야. 너가 받은 것을 나에게 돌려주겠다는 너의 그 예쁜 마음을 기뻐했던 거란다. 아빠가 말했지? 어른이 되는 것보다 어려운 건 너의 마음을 지키는 거라고. 아빠는 너가 뭔가를 해줘서가 아니라 너가 아빠를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을 기뻐했던 거야. 그러니 아빠를 생각한다면 다시는 이런 짓은 하지 말렴. 명심해, 어른은 누구나 될 수 있지만, 너의 마음을 지킨 채 어른이 되는 게 중요한 거야. 너는 치킨을 산다는 목표에만 사로잡혀서 아빠를 기쁘게 했던 그 마음을 잊었기에, 아빠는 잘못된 돈으로 산 이 치킨을 받을 수 없단다. 이건 너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알겠지?”
아버지의 엄한 훈계에 이윽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 아이. 그러나 아이의 아버지의 눈에선 어째서인지 그보다 더 큰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치킨을 포장째 버렸고, 지갑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아들의 손을 잡고 아이가 들렸다는 문방구로 향했다.
아이의 시선에는 두려움과 죄책으로 인한 수치심, 치킨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났지만, 아버지의 목적은 처음부터 치킨이 아니라 아이였기 때문에 그 모든 행동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