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같은 사랑
“자기야 나 사랑해?”
“그럼 사랑하지.”
“엄마 나 사랑해요?”
“그럼 엄마는 널 정말 사랑하지.”
“왕왕!”
“우리 귀여운 초코! 엄마가 초코 정말 사랑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관계에서 사랑을 확인받길 원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에겐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아무리 마음이 크다고 한들, 말로 전하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요.
흔히 연인들이 서로를 향해 원망하는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잖아!’라는 말은 정말 말 그대로 진리입니다. 천 냥 빚도 말 한마디로 갚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 한마디를 꺼내지 못해 오랫동안 기다려온 기회를 잡지 못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죠.
그러나 말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하고 또 어려운 것이기에, 우리는 종종 반대쪽의 함정에 빠지곤 하는 거 같습니다. 말로 했으니 충분하다는 함정 말입니다.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연인에게 “사랑한다고 했잖아!!”라고 윽박지르는 사람이나, 매일 밤, 늦은 시간까지 집 밖을 싸돌아다니면서 술에 취해 들어올 때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장이 그러하겠죠.
사실 사랑을 확인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그런 말뿐인 사랑이 아닐 텐데 말입니다.
그럼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이기에, 왜 우리는 사랑한단 말 뿐으론 만족할 수 없는 걸까요?
사랑은 희생적입니다. 무언가 사랑한다면 희생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상대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하여 나를 희생하는 것. 그걸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자기희생은 하나도 없이 내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는 ‘사랑해’가 힘이 없는 이유입니다. 어떤 울림도 주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가 하는 사랑이 진짜인지 아닌지 압니다. 그래서 은연중에 불안해하죠.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과연 온전한 것일까?’, ‘내가 받고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까? 혹시 상대가 날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이 사람은 내 전부인데, 이 사람에게 나는 전부일까?’, ‘이 사람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줄까?’
분명 원하던 것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믿음이 없으니 확신을 얻지 못하고 평안은 없이 두려움에 떨기 시작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말뿐인 사랑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자기 자신조차도 속이는 것이 사람인데, 하물며 상대를 이용하기 위해서 입에 바른 사랑을 연기 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사람은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는 채로는 견딜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하기에 끊임없이 자신을 채우기 위해 사랑할 무언가를 찾아 나서죠.
숭고한 사랑이라곤 하지만, 길 잃은 사랑만큼 무서운 것이 없는 이유입니다. 타오르는 사랑의 갈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눈을 가리고 어떤 일이라도 하게 만드니까요.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아낌없는 희생을 하는 존재이지만, 사랑하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는 순간부터 괴물로 변하고 맙니다.
단언컨대 사랑이라는 탈을 쓰고 나의 희생은 하나도 없이, 남을 희생시키기만 하는 괴물 같은 사랑은 전부 거짓입니다.
자신이 사랑받기 위해, 상대의 의사를 무시한 채, 스토킹하고 가스라이팅합니다. 상대를 구속하는 모든 행동을 사랑이라는 말로 정당화합니다.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심을 만족시켜줄 소유물로써 상대를 희생시키는 대표적인 사례죠.
자기 자신을 향한 엇나간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지 조금만 더 살펴볼까요?
자신의 정욕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핑계 삼아 육체의 갈증을 만족시키기 위해 상대를 상처입힙니다. 마음속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망들을 끊임없이 피워 올리는 주제에 입술로는 온갖 미사여구를 펼쳐 보이며 그것이 사랑이라고 포장합니다.
게으름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허황된 꿈만을 늘어놓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현재를 희생시키죠. 그 사람이 꿈을 꾸는 이유를 들어보면 결국은 자신이 게으르게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게으름은 엇나간 자기 사랑입니다. 나의 안락함을 사랑하니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꿈만 꾸다가 현재를 희생시키고 끝내 미래까지도 희생합니다.
돈을 사랑하니 이익을 위해선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말하며 윤리를 저버립니다. 독재자들은 자신의 명예와 이권을 사랑하여 수많은 국민을 적의 총탄 앞에 희생물로 내밀며 어떠한 가책도 느끼지 못하기도 합니다.
‘나는 사랑하는 것도 없이 희생도 안 하고 잘살고 있는데?’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은 아마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 겁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고선 견디지 못하는 존재니까요.
나를 사랑하니 타인을 판단하는 것에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합니다. 자신이 그렇게 판단 받으면 화부터 낼 거면서, 타인을 그렇게 판단하고 모함하는 것엔 일말의 거리낌조차 없죠. 나의 커리어를 사랑하니 상대의 진심이 아니라 조건을 따지며 상대를 무시합니다. 나의 실수는 용서받기를 원하면서 타인의 실수는 타인이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물고 늘어지죠. 내가 나를 아끼기 시작하니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을 보면 축하가 아니라 질투가 피어오릅니다. 나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을 보면 시기가 올라오고 그들의 몰락을 어찌나 그렇게 기뻐하는지.
‘분명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의 근본적인 원인은 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나를 기준으로, 나만을 위해 돌아가니, 타인이 어떻게 느끼던, 타인이 얼마나 피해를 보고 상처를 입던,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상처는 그렇게나 아프다고 소리를 높이죠.
이기적인 사람은 절대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귀하다면 남도 그만큼 귀하다는 그 작은 상식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희생을 통해 기쁨을 누리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그 기쁨은 이해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어리석다 비웃기나 할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하는 이 사랑이 말뿐인 사랑인지, 진정한 사랑인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나와 지금 썸을 타고 있는 그 사람이, 사랑하는 법을 배운 사람인지 아닌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아니 더 나아가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우리의 삶 속에서 무엇이 희생되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대할 때 늘 같은 문제로 상처받고 희생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트러블이 늘 똑같진 않습니까? 우리가 하는 연애가 늘 같은 이유로 실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삶은 무엇에 쫓기고 무엇을 희생하고 있습니까?
문제가 닥쳤을 때 우리는 어떤 것을 먼저 포기하고 어떤 것을 희생하기 어려워하고 있습니까? 혹 희생할 생각보단 희생시킬 생각을 먼저 하곤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사랑에 늘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면, 그건 우리의 사랑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닐까요?
진정한 사랑의 회복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