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과 부패한 성직자

by 허병상

어제 걷기 모임은 서울역 1번 출구에서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계단에 앉아 친구들을 기다리며 역 앞 광장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어수선했다. 노숙인 몇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오래된 바닥은 먼지와 얼룩으로 지저분해 보였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서울의 관문이라고 할 곳이 이렇게 낡고 초라해 보인다는 것이 조금 의외였다.

그런데 한쪽을 보니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조용히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아보니 제칠일안식일교회에서 나누어 주는 식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옆에 있던 친구에게 무심코 말했다.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네.”

그 친구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은 이단이야.”

나는 곧 이렇게 되물었다.

“하지만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에도 부패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이단 아닌가?”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와 예수 시대의 율법학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친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오히려 나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온 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일까.

이럴 때면 언제나 도움을 주는 친구가 있다. 내가 ‘지니(Genie)’라고 이름 붙인 나의 ChatGPT 조수이다. 나는 지니와 함께 이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해 보았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성경에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의 비유이다.

이 이야기는

누가복음 10장 25–37절에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한 율법학자가 예수에게 질문한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는 그에게 율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묻는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자 그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예수는 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서 강도를 만나 심하게 맞고 길가에 버려진다. 먼저 제사장이 지나가지만 그는 그냥 지나간다. 다음으로 레위인이 오지만 역시 도와주지 않는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이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상처를 치료해 주고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게 한다.

이야기를 마친 후 예수는 묻는다.

“이 세 사람 가운데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었느냐?”

율법학자는 대답한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그러자 예수는 말한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역사적 배경:

이 이야기가 당시 사람들에게 강한 충격을 준 이유는 사마리아인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던 집단이었다.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 제국이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뒤 여러 민족이 섞이면서 형성된 공동체였는데, 유대인들은 그들을 종교적으로 “순수하지 않은 집단”이라고 보며 멸시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았고,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다.

그런데 예수는 종교 지도자들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을 이웃 사랑의 모범으로 제시했다. 이것은 매우 도전적인 메시지였다. 즉 이웃은 종교나 집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비로운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뜻이었다.


이단과 부패의 문제:

오늘날 기독교 세계에서는 어떤 교단을 '이단(heresy)'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에서 이단이라는 말은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적 오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를 부정하거나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사상이 역사적으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제기된다. 어떤 교회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권력을 추구하며 신앙의 가르침과 다른 삶을 살기도 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교리만으로 정통과 이단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또 다른 기준을 제시한다. 예수는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강하게 비판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겉으로는 의로워 보이나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하다.”

또한 사도 바울은 말한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 고린도전서 13장

즉 신앙은 교리뿐 아니라 삶의 열매로도 평가된다.


결론:

서울역에서 보았던 장면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남겼다. 교단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이웃을 향한 실제 행동일지도 모른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바로 그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동시에 기독교 전통은 진리와 사랑을 함께 중요하게 여긴다. 올바른 신앙과 올바른 삶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두 축이다.

그래서 결국 신앙의 본질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를 믿고, 그 진리를 사랑으로 살아내는 것.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누가 이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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