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난파 가옥"

by 허병상

오늘은 동기들과 함께하는 ‘걷기 모임’에 다녀왔다. 이 모임은 가까운 산자락 길을 찾아 걷다 쉬고, 쉬다 걷는 편안한 모임이다. 때로는 학창 시절의 장난기가 되살아나 잠시 소란스러워지기도 한다.


오늘 우리가 걸은 곳은 서울 도심, 정동 일대였다.

덕수궁 뒤편에서 시작되는 정동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 양쪽으로 각국 대사관과 오래된 교회 건물들이 이어진다. 이 길은 인왕산 기슭까지 완만하게 이어지는데, 대한제국이 서양 세계에 문호를 열기 시작하던 시기에 외국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 바로 이 정동 일대였단다. 서양 선교사와 외교관들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학교와 교회, 병원을 세우기 시작했고, 그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1885년 세워진 최초의 남학교 배재학당, 곧이어 여성교육을 위한 이화학당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도 이 지역이 당시 주한 외국인들이 모여 살던 곳인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동길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서울성곽의 일부가 나타나고 곧 인왕산 자락이 가까이 다가온다. 이쯤에서 또 하나 뜻밖의 장소를 만난다. 바로 작곡가 홍난파가 살았던 집이다.

이곳은 현재 ‘홍난파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보존되어 있으며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는 독일인 선교사가 지은 서양식 주택이라고 한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서양식 건물이어서인지, 외관은 서울의 전통 가옥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홍난파 선생이 이 집을 사서 살았고,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정부가 매입해 일반에 공개하고 있으며,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선생의 손자가 직접 해설을 맡아 집과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홍난파(1898–1941)는 한국 근대 음악사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흔히 ‘한국의 슈베르트’라 불린다. 그의 음악은 서양 음악의 형식을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인의 정서를 섬세하게 담아냈다. 특히 <고향의 봄>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 노래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과 고향의 풍경을 떠올린다. 이 밖에도 그는 <봉선화>, <성불사의 밤>, <옛 동산에 올라>, <고향 생각> 등 많은 곡을 남겼다. 그의 작품에는 식민지 시대를 살던 한국인의 애틋한 정서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동은 단순히 걷기 좋은 길이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여러 장면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공간이다. 근대 교육의 시작, 서양 선교사의 활동, 대한제국의 외교 무대, 그리고 한국 음악사의 한 장면까지, 작은 골목 하나에도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오늘은 그 길을 천천히 걸으며, 친구들과 함께 옛 시간을 더듬어 보는 하루였다. 때로는 중학생 시절의 장난스러운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 그런 웃음 속에서도 우리는 조금씩 나이를 먹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래도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역사와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충분히 값진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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