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책을 많이 읽기로 평판이 난 친구가 있다. 일년이면 50권을 넘게 읽는다고 하니 한 주에 한권 꼴로 읽는 셈이다. 그런데, 이 친구가 실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왜 책을 읽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과 말이나 행동에서 전혀 차이가 나지 않는다. 더구나 이 친구가 읽는 책은 만화책이나 싸구려 3류 소설이 아니다. 하나같이 명작으로 잘 알려진 좋은 내용의 책들이다.
혹시 이 친구는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에 몸을 던진 보살일까? 그럴 리 없다.
사실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방금 내가 지어낸 인물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비슷한 경우의 호사가들이 차고 넘친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 예외일 수 없다.
작년 한 해 동안 읽고 메모한 책의 숫자를 헤아려 보니, 꼼꼼히 메모하며 끝까지 읽은 책이 31권이고 끝을 보지 않은 책까지 더하면 족히 쉰 권을 넘긴다. 한 권에 300페이지로 치면 15,000페이지가 넘겠다. 그래서 내 마음의 키는 얼마나 컸을까? 크게 하기는 커녕,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책이 태반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 마디로 읽어도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고 책장만 넘긴 것이다. 설혹 읽을 당시에는 나름대로 이해하고, 더러 무릎을 치며 감탄했더라도 바로 잊어버린 경우가 거의 전부다.
이쯤에서 "제텔카스텐"(손케 아렌스 지음)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보자.
"메모 상자를 활용해 작업한다는 것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놀면서 흥미로운 연결 관계와 비교 관계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이때 우리는 여러 메모들을 가지고 머리를 짜내어 가장 잘 맞는 것을 찾아야 한다. 이 작업은 다른 과제들보다 연상에 훨씬 더 많이 의존하며, 재미있고, 창조적이고, 다른 과제들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주의력을 요구한다."
한 마디로, 책이 주는 메시지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가지고 놀면서, 머리를 짜내는" 노력을 기울이라는 뜻이겠다.
만약 50권 대신 10권만 읽고, 그 시간에 읽은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달리 손해볼 일이 있을 리 없다.
문제는 과정이 지루한데, 결과는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점이다. 숱한 고비가 있을 텐데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평생 묘목 처지로 남겠다면 쉽다. 포기하면 그만이다.
만약 울창한 나무가 되고자 한다면, 따가운 한여름 태양이 쪼이든 북풍한설이 내리든 버텨낼 수밖에 없다. 선택은 나의 몫이다. 결과 역시 언제나 나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