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 1.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가?

by 허병상

아직도 가야할 길 1부 훈육


정신과 의사가 경험을 통해서 알려주는 자녀 훈육에 대해 알아봅니다.

출처: "아직도 가야할 길" 스캇 펙 지음, 최미양 옮김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가?


자녀들을 훈육시킨다는 것은 괴로워하는 법과 동시에 성장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의미다. 훈육은 고통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12살에 이미 부모가 말하지 않아도 텔레비전을 보기 전에 책상에 앉아서 숙제를 마칠 수 있게 된다. 열다섯이나 열여섯 살이 되면 이러한 행동은 청소년의 당연하고 정상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이 연령대의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상당히 많은 청소년들이 이러한 행동 발달 기준에 크게 못미치는 현실을 목격한다.

왜 그럴까?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능력은, 여러 증거를 종합해 보면, 부모의 양육 방식이 결정적인 요인임이 거의 확실하다.

얼마 전 서른 살의 재무분석가와 몇 개월간 치료 상담을 했다.

그녀는 일할 때 질질 끌면서 미루는 버릇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모든 정석적이고 고통스러운 심리분석 치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일을 미루고 미적거렸다. 마침내 어느날, 우리는 가장 분명한 사실부터 분석해 보기로 했다:

케이크를 좋아하는 그녀는 빵 부분과 크림 부분 가운데 특히 크림 부분을 좋아했고, 항상 크림부터 먼저 먹었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처음 한 시간 동안은 좀더 즐거운 일에 시간을 보냈고 그 다음 여섯 시간은 하기 싫은 나머지 일로 채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나는 처음 한 시간 동안 즐겁지 않은 일을 억지로라도 해치우고 나서 나머지 여섯 시간을 자유롭게 즐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 기본적으로 의지가 강했던 그녀는 내 말을 받아들였고, 더 이상 일을 끌지 않게 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원했다면 완벽할 정도로 잘 돌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돈을 받고 아이를 돌보는 집으로 그녀를 보내버렸다. 부모는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하찮은 존재이며 사랑 받을 가치가 없다고 느끼며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을 절제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지적이고 유능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 절제에 관한 한 가장 기초적인 학습이 필요했다. 자기 가치와 자기 시간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되면, 시간을 절약하고 계획을 세우고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자제가 안 되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부모의 훈육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아이들은 어린 시절 자주 심하게 벌을 받았다. 이러한 절제되지 않은 훈육은 의미가 없다. 부모 자신들이 자제가 안 돼 있어서 자주 술취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위엄도 조심성도 없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마치 "내가 말한 대로 하고 내가 행동하는 대로는 하지 마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린 눈에 비친 부모는 신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아이들은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 한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은 생후 6개월 무렵, 즉 자신이 부모와는 분리된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서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은 아주 무력하다는 것, 즉 모든 삶을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한 온갖 것들을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그것이 모두 부모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에게 버림받는 것은 죽음과 같다. 부모의 사랑한다는 말이 행동과 일치하면서 아이들은 청소년기가 될 때쯤 버림받는다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세상은 안전한 곳이고 필요할 때는 언제나 보호받을 수 있다는 느낌을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될 것이다. 세상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자유롭게 이런 저런 즐거움을 뒤로 미룰줄 알고, 즐거움을 가질 기회는 집과 부모처럼 언제나 거기에 있으며 필요하면 가질 수 있다는 것도 확실히 안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삶이 힘들다는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말한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오로지 문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자극하고 지원해야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바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고통을 통해서다.

요약: 장유(長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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