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 2. 책임을 지는 것

by 허병상

아직도 가야할 길 1부 훈육

정신과 의사의 관점으로 본 자녀 훈육 방법을 요약해 옮깁니다.

출처: "아직도 가야할 길" 스캇 펙 지음, 최미양 옮김


2. 책임을 지는 것:


1) 신경증과 성격 장애

사람들은 살면서 많은 문제와 부딪힌다.

당신은 자신의 나쁜 버릇들, 아이들의 문제나 가족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을 바쳤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라고 체념한 적은 없는가?

이런 성향이 심한 사람들을 정신과 의사들은 "신경증"이나 "성격장애"가 있다고 진단한다.

신경증을 가진 사람은 그들이 수준 미달이고 늘 엉뚱한 선택을 하는 열등한 존재로 자각한다. 말투도 "꼭 해야 하는데", "마땅히 하는게 좋은데", "해서는 안되는데"와 같은 표현들을 즐겨 쓴다. 다행히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에게 닥친 어려운 처지에 책임을 지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보다 치료가 쉽다.

더 심각한 경우는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든 문제를 다른 사람, 혹은 주변 환경의 탓으로 돌린다. "자신은 선택권이 전혀 없는 사람이고 자기 행동은 전적으로 자기 능력 밖에 있는 외부의 힘에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쩔 수 없었어", "이렇게 해야만 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와 같은 표현을 심하게 사용한다. 어떤 경우든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으므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당연히 치료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신경증과 성격장애는 대개 붙어서 다니는데 정신과 의사들은 "성격 신경증 환자"라고 부른다. 신경증 환자들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든다.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자식을 망치는 부모가 된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관심을 주기 보다는 갖가지 핑게로 아이들을 밀쳐낸다.

"애들아, 너희 때문에 미치겠다"

"내가 아빠와 이혼하지 않고 사는건 오직 너희 때문이야."

"너희를 돌볼 필요가 없었더라면 대학을 졸업하고 성공했을거야 ."

이러한 부모는 사실상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 결혼생활이 이 모양인 것도, 내 정신이 건강치 못한 것도 내가 성공하지못한 거도 다 너희 책임이야."

모든 아이들은 성격장애와 신경증을 지니고 있다.

형제가 싸우게 되면 늘 상대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고 비방한다. 또는 아이들은 어떤 상실을 겪고 납득이 안되면 본능적으로 책임지려 한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부모가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대신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춘기 초에 스포츠나 데이트에 능하지 못한 아이들은, 정말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데도 스스로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성격장애는 거의 틀림없이 성격장애나 신경증이 있는 아이들을 만들게 된다. 또 아이에게 은연중 무책임한 태도를 가르치게 된다.


이러한 성격적 특징은 결혼 생활, 친구관계, 업무적인 상황에서도 나타난다. 즉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못한다.

문제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를 무시해버리면 그것은 더 커지고 더 해결하기 어렵고 고통스러워진다. 아이들이 커면서 생기는 문제 또한 무시해버리면 그것은 더 커지고 더 해결하기 어렵고 고통스러워진다. 당신이 해결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신은 문제의 일부가 되고 말 것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종 자기 문제를 책임지는 고통을 피하려고 애쓴다.

내가 정신과 수련의 과정을 이수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대부분의 동료 수련의보다 더 헌신적이었던 탓에 그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였다. 다른 동료들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만 환자를 보았는데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 만나는 일이 잦았다. 결과적으로 동료들은 매일 오후 4시30분에 퇴근하는데, 나는 밤 8시, 9시까지 잡혀 있었고, 이내 억울한 기분에 휩싸이게 되었다. 점점 억울함이 더해가고 점점 더 지치게 되자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과 과장을 찾아가서 내 문제를 털어놓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자네의 시간에 생긴 자네의 문제"라는 말뿐이었다. 과장의 무책임한 태도에 실망했지만 달리 취할 방도가 없었다.

몇 달이 지나서 결국 나는 과장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내 시간은 나말고 누가 책임질 수 있겠는가? 내 시간을 어떻게 쓰든 그것은 결국 나의 책임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짐은 내가 스스로 택한 것이었고, 과장이나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내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내 태도가 바뀌자 동료들에 대한 분노는 사라졌다. 원하면 그들처럼 지낼 수 있는 완벽한 자유가 있는데, 그들이 나와 다른 스타일을 선택했다고 그들에게 화를 내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행동에 책임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행동의 결과로 따라오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는 데서 비롯한다. 과장에게 상의한 나의 태도는 그에게 "나의 권한과 자유"를 주려고 했던 것이다.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고 할 때 우리는 항상 그 책임을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나 존재에 넘기려고 한다. 그것은 우리의 권한을 그 존재에 양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리히 프롬이 나치즘과 독재주의에 대한 연구서의 제목을 "자유로부터의 도피"로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책임이 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매일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한다.

성인의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유로워 진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자신을 희생자라고 느낄 것이다.

요약: 장유(長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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