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자

by 허병상

며칠 전 글 제목이 「올해 얼마나 자주 웃을지」였는데, 조금 늦었지만 이제 올립니다.


얼마 전 가까운 친척 아이가 전문의 자격을 따고, 의원을 차린다며 인사를 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한마디 했습니다.

“자네는 웃는 모습이 좋아.

그러니까 환자를 볼 때, 자주 웃도록 하게.”


이 사람은 잘생기고 성격도 좋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는 다소 조심스러운 편입니다. 그래서 표정이 종종 엄숙해지고, 자칫하면 쌀쌀맞게 보일 수도 있지요.

그래서 예전에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동네 소아과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의술은 나쁘지 않았지만, 의사가 워낙 도도해서 말 붙이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몇 년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지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도 괜히 생긴 게 아닙니다.

물론 좋은 일이 있어서 웃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습지 않은데 억지로 웃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아픈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금세 지치게 마련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밝은 표정을 유지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억지 웃음은 상대방도 금방 알아차립니다.


사회생활도 다르지 않습니다. 윗사람에게 심한 꾸중을 들을 때도 있고, 거래처로부터 인간적인 수모를 겪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상대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당장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속을 썩이거나, 부부 사이에 다툼이 생겨 마음이 상할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만 부글거리곤 합니다.


사람 사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부처님께서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 번째 화살은 삶이 쏘지만,

두 번째 화살은 내가 쏜다.”

― 『상윳따 니까야』 「화살의 경」


조금 더 풀어 말하면, 범부는 고통을 당하면 첫 번째 화살을 맞고, 그 고통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집착하면서 스스로 두 번째 화살을 다시 맞는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 화살은 이미 일어난 사실입니다. 병, 실패, 꾸중, 손해 같은 것들입니다.

두 번째 화살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내 마음이 덧붙이는 것입니다.

“왜 하필 나인가?”

“이건 부당하다.”

“이 고통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이런 생각들이 만들어내는 분노, 자책, 원망, 집착이 바로 두 번째 화살입니다. 아무 쓸모 없이 스스로를 더 깊이 찌르는 반응입니다.


이 점에서 예수님의 말씀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 「마태복음」 6장 27절

이미 주어진 조건은 바꿀 수 없는데, 염려는 고통만 더할 뿐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삶이 쏜 첫 번째 화살을 피할 수는 없지만, 두 번째 화살까지 맞을 필요는 없다는 것. 이 단순한 통찰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올해 우리는 조금 더 자주 웃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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