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글 쓰기 (12/12/365)
절친 셋과 점심을 함께 했다.
오랜만에 만난지라 근황을 주고 받다가, 불교 공부로 화제가 옮아갔다.
친구 A는 요즘 『유마경』을 탐독 중인데, 단순히 해설만 읽지 않고, 한문으로 된 내용까지 해독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단다. 사연인즉 이렇다.
『유마경』의 「견아촉불품(見阿閦佛品)」에는 "夫日何故行閻浮提(해가 무슨 까닭으로 염부제에 뜨지요?)"라는 구절이 있다. 통상적으로 '夫'는 '지아비 부'라고 해서 사내 혹은 남자 장정을 뜻하지만, 그래서는 통하지 않는다. 사전에 찾아 보아도 쉽게 적당한 풀이를 찾을 수 없었단다. 더 깊이 고심한 끝에 마침내 친구는 '무릇' 혹은 '대저'의 뜻으로 결론 지었다고 한다. 대단하다.
『유마경』은 나도 매우 애호하는 책이다. 내 기억에도 같은 구절을 읽다가 '夫'의 "뜻을 잘 모르겠네"하고 넘어간 기억이 있다. 여러 번 읽었지만, 나는 한 번도 파고들지 않고 한글 번역에 만족하였다. 우리 세대는 한문교육을 집중해서 받지 않았고, 한문을 해독하지 못해서 부끄러울 일은 없다.
집에 와서 친구가 말한 내용을 ChatGPT에게 물어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얻었다.
"여기서 '夫'는 문법적 뉘앙스가 지시적 '夫' 즉 언급된 대상을 가리켜 “그, 바로 그(彼, 是)”의 뜻을 가집니다. 따라서 여기서 "夫日"은 “대저 해”라기보다 “그 해(앞서 말한 해)”라는 지시적 용례입니다. 한문 불전에서는 종종 문두(文頭, 글머리)에 쓰이는 '夫'가 대저(무릇)의 감탄사뿐 아니라, 앞 문맥을 이어받아 특정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어로도 쓰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친구는 삼성물산에 입사해서 오래 삼성맨을 지냈다. 요즘은 '삼성 고시'라고 부른다지만, 우리가 졸업할 때도 삼성그룹의 공채시험은 어려웠다. 요즘의 삼성전자가 그렇듯이 그 시절에는 삼성물산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었다. 오늘날 반도체가 우리나라의 경제에 중요한 이상으로, '수출입국'이 절체절명이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사회에 나왔지만, 나는 목표가 달랐다. 나는 영업이 좋았다. 어디든 영업사원을 시켜줄 곳을 찾았다. 필기시험은 치르지 않고 면접만으로 선발하는 다른 재벌 그룹의 회사에 입사하였다.
만약 그 때 내가 삼성그룹 시험에 응시했다면 합격했을까?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왜 그럴까?
어제 점심식사 전에 이 질문을 받았더라면 내 대답은 "공부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말은 "나는 충분히 자질이 있는 사람인데, 단지 게을렀기 때문이고, 만약 열심히 했다면 합격했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지금의 내 대답은 이렇다.
"열심히 했더라도, 나는 합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집중해서 파고들지 않고 건성건성 공부했기 때문이다. 공부방법이 나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부해서는 삼성고시에 합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친구는 열심히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모르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끈기있게 집중했고, 핵심을 이해했을 것이다.
『대학(大學)』은 또다른 인류 정신문화의 전래물이다. 그 유명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도리를 가르치는 책이다. 책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바탕이 수신(修身)에 있음을 천명하며 시작된다. 또 수신(修身)의 근본을 "뜻을 성실하게 해서 앎을 투철히 하는 데 있다"고 가르친다(意誠, 知致, 物格). 그 중에서도 기본이 "앎을 투철히 하라(格物致知)"가 아니겠는가? 나는 투철하지 못했다.
요즘은 책읽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그런데 도무지 기억으로 남지 않고, 조리있게 설명할 수도 없다. 나는 이런 현상을 나이 탓으로 돌리고, 맞추며 살려고 해 왔다.
그러나 어제의 교훈을 돌이켜 볼 때 문제는 기억력이 아니다. 문제는 '파고 드는 노력'이 부족한 점이다. 이것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여간 다행이 아니다. 이런 낭보가 없다. 사실 기억력 감퇴 조차도 집중해서 노력하다 보면 두뇌의 재생능력을 통해서 늦출 수 있다고 한다.
공자님은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셨다(志學)고 하였다. 그 위대한 분보다 겨우 60년 차이라면 나쁘지 않지 않은가? 매사에 긍정적이면 병인가? 약인가?
여하튼 내일도 염부제에 해가 뜰 것이다. 기대된다.
(염부제: 불교적인 세계관으로 수미산 남쪽에 있는 커다란 섬. 우리가 사는 세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