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글 쓰기 (21/21/365)
중동에서 석유값을 미친듯이 올린 것이 1973년이였습니다. 찾아보니 1972년 배럴당 US$2.48였던 원유값이 1973년 말에는 US$11.65로 올랐었군요. 온 나라가 망하기 직전의 꼴이 되어 난리가 났었지요. 이듬해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갔더니 회사가 초비상이었습니다.
그 후 10년 동안 휴가는 두 번 갔습니다. 처음 휴가는 광복절을 끼고 토요일을 포함해서 4일간, 또 한 번은 토, 일을 포함한 4일간이었습니다. 그 때 나의 소원은 남보다 일찍 낚시터에 도착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밤낚시는 자리가 특히 중요하잖아요.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면서 훨씬 좋아졌지만, 언제나 빡빡한 30여 년을 보냈습니다.
퇴직을 하고 드디어 마음껏 내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년 365일 동안 휴가를 마음껏 쓰게 되었습니다. 휴가수당을 줄 곳이 없으니 안 쓸 이유도 없습니다. 처음 일 년은 좋았죠. 2년째 들어서면서, 새로운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갑자기 집안에 갇힌 꼴이 되었습니다. 내 '나와바리'는 바깥이고, 집안일은 아내의 영역이었습니다. 나의 핵심역량은 주로 바깥과 관련된 일들인데 갑자기 아무 소용이 없어졌습니다. 벽에 못을 박아도 나보다 아내 솜씨가 월등합니다. 마신 물잔을 - 미안한 마음으로 - 개숫대에 헹궈서 두기라도 하면 물을 흘렸다고 불벼락이 내렸습니다. 유용한 곳이라고는 쓰레기 버릴 때, 청소기 돌릴 때, 그리고 아내가 행차할 때 운전하기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나는 하루 세끼 꼭 챙기지 않으면 안되는 삼식이입니다. 손자병법에서 말했죠? 나의 강한 곳으로 적의 약한 부분을 상대하면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긴다고.
그래도 그 정도는 꿋꿋이 버틸 수 있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내 마음에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마음이 허합니까? 아무 쓸모없고 갑자기 벌레, 식충이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주변 친구들 거의 모두가 예외없이 앓고있던 병이기도 합니다.
이런 노래 있죠? "마른잎이 한잎두잎 떨어지던 지난 가을날, 사무치는 그리움만 남겨놓고 가버린 사람…." 제목이 "허무한 마음"인가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겉으로 봐서는 호강에 겨운데 왜 이래?
내가 발견한 정답은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맹자가 그랬죠,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다"고.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할 때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생산한거죠. 내 마음은 '회사일 하기'를 제외한 다른 일은 생산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항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표를 세웠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장기 목표를 세워서 전략을 짜고 매일, 매주 평가하였습니다. 10년 뒤에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데, 무슨 일을 어떤 전략으로 해야 하며, 구체적 전술은 무엇인지 정했습니다. 운동은 매일 몇 시간 동안 하고, 책은 얼마나 읽고, 친구는 몇 번이나 만날지. 모든 굵직굵직한 일들을 계수화된 목표로 바꿔서 정기적으로 평가하였습니다. 항목과 방식만 바뀌었지 큰 틀은 평생 회사에서 하던 방식으로 내 생활을 계획하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렇게 지난 20년 동안 스코어 시트 형식으로 엑셀 차트에 기록했습니다.
요즘은 매일이 충만합니다.
내 책상 머리에는 추사의 세한도가 걸려있습니다. 오두막이 있고 가지가 꺾어진 늙은 소나무가 지키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젊은 소나무가 세 그루 버티고 섰습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세 아이들 같아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