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글 쓰기 (2-4/25/365)
어제 글을 읽은 분이라면 기억하겠지만, 이 달부터 두 개의 주제를 하나로 묶은 글을 써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낮 동안 읽은 글을 되새김질해서 내 것으로 녹이고, 동시에 글쓰기도 익숙해지고자 함입니다. 제법 머리를 굴렸죠? 막상 실행에 옮기자니 막막하기 짝이 없습니다. 모임에서 주어진 제목은 일상적이니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됩니다. 문제는 내가 읽은 글에서 뽑아낸 제목입니다. 워낙 어려운 주제인데, 서툰 솜씨로 풀어서 다른 주제에 섞겠다니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칫, 궤변에 억지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읽는 분도 드물지만, 혹시 읽드라도 초학도의 객기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어진 글 주제는 "추석날 우리집 풍경"입니다. 내가 고른 주제는 "어떻게 우리 가족을 증장(增張)할 수 있을까?"로 하겠습니다.
첫번째 주제, "추석날 우리집 풍경"은 오늘이 추석이기 때문에 주어졌겠지요.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두번째 주제의 배경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요즘 『유식30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책에 나오는 게송을 알기 쉽게 풀어서 해석한 내용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식(唯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불교와 세간에서는 어째서 아(我)와 법(法)이 존재한다고 하는가'라는 반대론자의 질문에 대해, 세친(世親)은 아와 법은 가(假)에 의해 존재한다고 대답한다. 다시 말해 제법과 자아는 가설(假說)이고 식(識)이 전변(轉變)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가(假)란 어떤 의미인가? '가'라는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한다는 것, 인연에 의해 생기하는 것은 실체가 없다(無自性)는 것을 말한다. 즉 아와 법은 가(假)로써 설(說, 언어)할 뿐이라는 것이다." (『유식30송과 유식불교』 「의교광성분(依敎廣成分)」 김명우)
두 가지 주제를 이용해서 쓸 글의 제목은 "어떻게 우리 가족을 증장(增張)할 수 있을까?"로 하겠습니다. 우리 가족은 딸 셋을 더해서 모두 5명이었습니다. 요즘은 14명으로 불어났죠. 사위 셋과 외손 6명, 축구팀을 만들어도 감독, 코치에 후보선수 1명이 남습니다. 이것은 겉으로 본 우리 가족의 모습입니다. 충분히 "증장(增張)"된 셈입니다. 문제는 질적으로 "증장(增張)"하는 것입니다.
'가족'은 사회체계의 일부이니 위에서 말하는 '법(法)'에 해당되겠습니다. 여기서 잠시 인용한 게송이 어떻게 우리 가족과 연계되는지 책의 해설에 기대서 적어 보겠습니다.
"법의 한자적 의미는 "선악을 공평하게 가려내어 바른 쪽으로 행위를 이끄는 '본보기'를 뜻한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법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첫째, 법은 교설(교법)이다. 교설은 붓다가 일생을 바쳐 사람들을 위해 설한 가르침, '법'(Dharma)과 '율(Vinaya)의 두 종류 가운데 법이 교법에 해당한다. 나중에 경장과 율장으로 발전한다.
둘째, 법은 인(因)이다. 인이란 현상세계의 생멸변화의 원인이며, 인과관계의 인(因)을 의미한다. 즉 모든 현상에서 바른 인과관계를 나타낸 것이 법이다.
셋째, 법은 덕(德)이다. 덕이란 윤리 도덕으로, 사회의 인륜에 부합하는 정의나 선을 말한다.
넷째, 법은 비정물이다. 비정물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 즉 우리들이 지각이나 감각에 의해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는 현상적 존재를 말한다. 이것은 제법무아(諸法無我) 중의 법에 해당되는 말이다." (같은 책 88/280)
위의 인용문을 따라서 보면, 가족은 세계의 구성 요소이며 '인(因)'에 해당합니다. 즉, 인연으로 해서 만났고, 생멸변화하는 '현상적 존재'로서 기세간(器世間)의 일부입니다. 가족으로 만났다가, 다시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나갑니다. 더 세월이 지나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가겠지만, 그것은 현재 나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인연 따라 만나서 각자 자신의 가정을 이끌고 있는 우리 딸들과 사위들, 또 여섯 손자녀들과 과거 우리 다섯이 가졌던 것 못지않게 각별한 사랑을 유지하게 할 수 있을까, 이것 만이 나의 관심사입니다.
금년에는 민어가 싱싱해서 찐 생선 맛이 특별납니다. 차례에 올린 정종으로 입을 가시며 먹는 명절 음식이 맛납니다. 차례를 모시고 아내와 마주앉아 늦은 아침식사를 합니다. 어릴 때 명절 아침을 떠올리며 이랬지, 저랬지 하며 회고담을 주고 받습니다. 고향이 1km 남짓 떨어진 이웃마을이라서 우리는 함께 기억하는 일들이 꽤 많습니다.
이야기가 한창 오손도손 재미있는데, 문득 시선을 거실로 돌리니 치우지 않은 병풍이 덩그렇게 서있지 않겠습니까? 차례음식 옮기고, 제상이랑 돗자리랑 모두 걷어서 정리했는데, 병풍은 그냥 둔 모양입니다. 제사드리고 병풍치우는 일은 질색입니다. 오래된 병풍이 내 몸뚱이보다 더 무겁기 때문입니다.
명절날 내 역할은 음식 맛보기였죠ㅎㅎㅎ. 맛을 제대로 감별하자면 술로 입을 헹구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상펴고 걸레질 하기, 음식 나르기부터 상 정리학 등은 4,5,6번이 맡았습니다. 2번은 변함없이 요리담당이고요. 아 참, 내가 한 다른 일도 있습니다. 병풍 치우기, 딸아이들이다 보니 우리집의 장정이 나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사위놈'이 대신 해줄 것을 고대하면서.
아이들이 시집들을 가고나서 4,5,6번이 하던 일들이 모두 1번 차지가 되었지요. 2번도 일 하나가 늘었습니다. 1번 감독하고 잔소리 하는 일이지요. 막내가 시집간지 근 20년이 되었지만 1번은 여전히 2번의 지도편달을 받지않을 수 없습니다.
더도 들도 말고 화목한 추석을 보낸다면 바로 증(增)'과 '장(張)이 아닐까 합니다.
곧 몰려올 12명을 기다리면서.
후기: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서론은 있으나 본론, 결론은 생략한채 요령부득으로 끝났습니다. 잘 쓰면 돈 받고 쓰지 왜 추석날 궁상스럽게 숙제나 하고 있겠습니까? 읽어주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