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글 쓰기 (2-7/28/365)
오늘 주어진 주제: 추석 연휴 동안 가족들과 함께 겪은 특별한 경험
내가 고른 주제: 어른의 신(信)
명절 아침이면 유난히 집안이 호젓하게 느껴진다. 아이들 모두 출가하고 아내와 둘이서 차례를 모셔야 하니 적막강산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다행히 오후가 되면 자못 상황이 달라지는데, 이번 추석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후가 되자 큰애와 둘째의 식구 8명이 차례로 들이닥쳤다. 모처럼 집안이 북적거렸다.
벌써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큰손녀는 내 생일에 만났으니 석 달만이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가 좋아할 소식을 전했다. "나희가 온단다."
나희는 둘째 외손녀인데 둘이 한 살 차이라 그런지 각별히 친하다. 그 나희가 지 아빠를 따라 10월 말에 한국에 다니러 온다는 말을 전한 것이다.
그 순간 뒤에 서있던 아내가 손짓발짓 의문의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서, "어, 연말에 온단다."라고 내 말을 고쳐서 강조했다. 사연인즉, 학교에서 곧 중요한 시험이 있는데 나희가 온다는 소식에 들떠서 공부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당분간 비밀로 하자는 약속이 미쳐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별 수 있나! 엉겁결에 할애비도 거짓말하는데 공범이 되어버렸다.
당장은 얼버무리고 넘어갔지만 보름 뒤면 들통이 날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할애비도 "신용(信)이 없는, 믿기 어려운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려야 하나? 씁쓸하다.
글쓰기 주제를 당일 읽은 책의 내용 가운데 골라서 주어진 주제와 두 개를 뭉친 글을 쓰겠다는 이야기는 이미 두어 번 설명하였다. 오늘 글짓기는 "추석 연휴 동안 가족들과 함께 겪은 특별한 경험"이 주제로 주어졌는데 앞에 이야기로 일단 추석에 있었던 일은 설명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내용과 연결시키는 일이 도무지 어렵기 짝이 없다. 마침 "믿음(信)"에 대한 내용이 있지만, "종교적 믿음"에 대한 내용이라 직접 연결하기에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다만 글쓰기를 하는 목적이 글을 잘 쓰겠다는 목적에 더해서 공부한 내용을 숙지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두 가지인만큼 무리해서 이어 나갈 수밖에 없다.
잠시 『유식30송』 가운데 나오는 해설을 인용한다.
유식사상에서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일상의 세계는 연기, 무상, 무아라는 진리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 진리를 이성으로 아는 것이 신(信)이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지성적으로 진리를 알고 붓다를 동경하는 감정을 가지며, 자기도 수행을 하여 이런 길을 갈 수 있다는 의지도 신(信)이다.
신(信)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들의 인간관계는 수많은 믿음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예를 들면 부부간의 믿음, 부모와 자식 간의 믿음, 친구와의 믿음, 동료와의 믿음 등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인간관계는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의 전제가 없고서는 우리들의 인간관계는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만약 우리들이 서로 믿음을 갖지 못하고 불신하기만 하면 모든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그 사회체계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 『유식30송과 유식불교』 「의교광성분(依敎廣成分)」(김명우 편해)에서 요약.
내가 손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선의임에는 틀림없다. 잘되게 하기 위한 방편이고, 그 피해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며 당장 문제가 생길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할애비의 말에 대한 신뢰도가 사소한 일로 훼손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아마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면 콧등으로 흘려버릴 것이다. 그런데, 거짓말 잘하던 양치기 소년이 어떤 결과를 맞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집안에 절대 신뢰할만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어른의 역할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