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글 쓰기(3-15/57/365)
스무 살 나에게 알리고 싶은 세 가지 교훈
첫째는 "오늘 일에 최선을 다하라"라고 말하겠다. 학생이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이고, 직업을 가졌다면 주어진 직분을 성의껏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 말고 달리 성공의 지름길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의 예일 대학교에서는 갓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죽음(Death)"이라는 제목의 한 학기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Death | Open Yale Courses). 채 20세도 되지 않은 젊은이에게 왜 '죽음'을 가르칠까? 대학 신입생이라면 사회에 진출하기 직전에 준비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젊은이들에게 "시간은 유한하다"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둘째는 "부부가 함께 커라"라고 말하겠다. 부부는 "2인 삼각"이 아니다. 성공적인 부부는 "태권 V"의 "철수와 영희"처럼 일심동체로 한 팀이 되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 혼자서는 들지도 못할 책상을 둘이라면 멀리 옮기거나 던질 수도 있지 않은가. 혼자라면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부부이다. 누가 부부를 1+1=2라고 하는가? 1+1=∞로 쓰야 한다.
셋째, 100세를 내다보고 살아야 한다. 굳이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활동 능력'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삶은 단순히 '제로 섬 게임'이 아니다. 세상살이가 단순히 '돈따먹기' 혹은 '출세하기' 시합일 수는 없다. 노화란 질병의 일종일 따름이다. 누구나 죽게 되겠지만 그 과정은 개인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다르게 장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조차 숙명으로 부르기 어려운 세상이 되고 있다. 100년 전 한국인의 평균 기대 수명은 35~38세 였단다. 누가 오늘날의 수명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다면 성공적인 삶은 어떤 삶인가? 행복한 삶이 곧 성공적인 삶일까? 흔히 생각하는 행복한 노후를 생각해 보자. "부부함께 큰 병 없고, 제 집에 살면서 자작하지만 쪼들리지 않고, 아이들 건강하게 컸고, 손자들에게 둘러 쌓인 순탄한 노후",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다면 분명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볼 때 그런 삶을 얻은 노인들이 의외로 많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행복한 삶'을 얻었다고 반드시 '성공적인 삶'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만약 당신이 남달리 우수한 두뇌를 가졌고, 좋은 교육을 받았다면 성공 또한 남달라야 할 것이다. 그렇게 이룬 업적으로 '더 큰 기여'를 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삶은 결코 성공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면 미안한 일이 아니겠는가? 매사가 분수에 맞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