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글 쓰기
당신은 왜 책을 읽는가?
책을 읽고 지식을 얻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고? 그동안 꽤 많은 책을 읽은 당신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그래서 더 높이 승진을 했고, 더 많은 소득을 얻었고, 더 잘난 사람이 되었는가? 더 행복한가? 아직은 아니라면, 언젠가는 그렇게 될 자신이 있는가?
당신은 세속적인 이익에 관심이 없고, 오직 고매한 인격을 갖추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고? 그래도 마찬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아니 해 보아야 마땅하다.
책을 읽기 위해서 당신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절대' 한정된 것이 시간이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였으니 결과가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람은 생산성 있게 살아야 한다. 일과를 마칠 때 오늘 하루 생산한 산출물이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듯이, 귀한 시간을 소비했으니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행복해져야 한다. 그 결과 자신은 물론 주변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부처님이 그랬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책을 읽고 그 결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개는 공감할 것이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원인을 알아야 처방을 내릴 수 있지 않은가.
멀리 갈 것 없이, 나는 어떤가? 작년 한 해에 꽤 많은 책을 읽었다. 그 가운데 여럿은 꼼꼼히 요약까지 하면서, '이 잡듯이' 읽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더 나은 사람은 고사하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몽땅 잊어버렸는데 무슨 개선이고 발전이고 있겠는가?
왜 그런가? 왜 잊어버렸나?
얼마전 까지만 해도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읽은 내용을 부지런히 요약해서 옮겨 썼던 것이다. "젊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며 나이 탓을 했다. 다시 생각하니 터무니 없는 핑계일 따름이다.
기억력 탓이라면, 읽은 그 당시에는 이해를 했어야 마땅하다. 읽었던 바로 그 순간에는 무슨 말인지 알았던가? 대개는 아니다. 사실은 읽는 순간조차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냥 읽고 넘어가면서, 읽었다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그 뒤에 기억이 남지 않은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책을 읽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무언가를 전문용어 없이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어니스트 러더포드(Earnets Rutherford)란 미국 사람이 한 말이다.
책을 읽고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만약 책을 쓰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시급한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쓸 말이 없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쓸 말이 없나? 많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잘 모르기 때문인가?
미국의 기자이자 작가, 영화제작자인 세바스찬 융거는 작가들이 글을 쓰지 못하는 슬럼프를 일컫는 '작가의 벽(writer's block)'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작가의 벽에 부딪힌 것이 아니다. 주제에 관한 힘과 지식을 갖추고 글을 쓰기에 필요한 사전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았을 뿐이다. 적절한 단어를 떠올릴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글을 쓸 탄약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세컨드 브레인』, 티아고 포르테 지음)
비단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다. 사실은 우리의 일상 자체가 배움의 장이고 기회이다. 우리는 삶을 통해서 무수한 경험을 하고 있다. 매순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
정보는 실제로 사용할 때에 비로소 '지식'이 된다. 그 경험들은 우리를 풍요롭게 해 줄 힌트들이지만, 우리는 게으른 타성 탓에 흘려 보내 버린다.
우리는 정보를 보관하고 창조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투자할 필요가 있다.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정보를 관리하기 위한 조금 더 계획적이고 신중한 방법을 찾아서,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한 몇 가지 실천 가능한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
이번에 정석헌 작가가 개설한 『나만의 지식도서관 만들기』에 참가한 것은 행운이 되어야 한다. 9회말 마지막 공을 던지는 투수의 각오로 임할 수밖에 없다.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