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나?

하루 한 글 쓰기

by 허병상

타인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시(無始) 이래의 관심사였다. 다시 말해 시간이 생기기도 전에, 늦어도 이 세상이 생기는 순간에 크게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강압적인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자율적 방법이다.

강압적인 방법이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너는 천국에 갈 수 있다. 만약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천벌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해서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지극히 연약한 존재일 따름이다. '신'이란 절대자를 등에 업고 인간은 다른 모든 피조물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서양의 유일신 사상이 전형적이다.


자율적 방법이란 인간 스스로 구원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나 해탈이 대표적이다. 소크라테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생각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동양의 경우 하늘(天) 혹은 도(道) 등으로 설명되었다는데 필자의 무지 탓으로 무어라 평하기 어렵다.


이 세상이 생기고 6천 년, 혹은 137억년, 혹은 그 이상의 무한한 세월 동안 이 방법은 계속해서 통용되어 왔다. 두 가지 방법이 각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은 강압적인 방식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안다. 귀염둥이들이 불과 몇 일 동안 훈련을 받고나서, 비 오듯 쏟아지는 총알을 뚫고 적진으로 달리게 하려면 이 방법 말고는 없을 듯하다.

강압적 방법으로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압이 지속되어야 한다. 점점 더 강력해 지는 것도 필수적이다. 최종적으로는 그렇게 해서 죽게 되면 천국에 가는 것을 보장해야만 한다. 오늘날도 세계 도처에서 같은 방식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율적 방법은 복잡하고 어렵다. 어떤 개인이 절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갖게 되기는 지난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효과는 강력하다. 신 위에 있는 인간이 되는 길이다. 그 완성된 상태가 바로 부처인데, 수억 겁의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나 유관순열사 같은 분은 부족하지만 이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 방법을 적당히 섞어 쓸 수밖에 없다.

몇 일 전 신문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첨단 기술을 많은 돈을 받고 팔아 넘긴 사람이 엄벌을 받았다는 기사가 났었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여러가지 강압적인 수단이 필요하겠지만 그것 만으로 근절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교육을 통한 계몽과 훈육이 적절히 활용될 필요가 있다. 아이들 교육이라고 다르지 않다. 사랑과 훈육이 함께 필요하다.


이 문제는 문명이 발달할 수록, 물질적으로 풍부해 질수록 점점 더 중요해 질것이다. 인간이 이룬 풍요가 도로 인간의 불행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현재 우리의 당면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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