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판매기 앞의 여자

호퍼의 캔버스에 나란히 앉은 우리

by 재재

그녀는 캔버스 속 여인처럼 앉아 있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자동판매기〉 속에서,
가로등조차 닿지 않는 조명 아래,
어딘가를 응시하며 앉아 있는 여자.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기다림의 포즈를 알고 있는 사람” 같다.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척,
지쳐 있지만 고요한 척,
그러면서 결국엔 누군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사람.

나는 그녀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

한때 감정에 대해 말한 적 있다.
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고,
그녀는 감정이 있어도
그걸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감정을 건네고,
그 다음 날엔 그 감정을 지웠다.
그게 그녀의 방식이었다.
사랑을 연기하지 않았지만,
사랑을 전시하지도 못하는 사람.

그래서 끝내,
그녀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묻지 않았다.

호퍼의 그림을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장면에서,
조금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면 어땠을까.
커피 한 잔 건네며 "왜 혼자예요?"라고
누군가 물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고,
여자는 정해진 정적의 포즈로
그림 속에 남았다.

그게 바로 그녀였고,
어쩌면 나였고,
사랑이라는 말이 가장 늦게 도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언젠가 내게 그녀가 말했다.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부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요.”


나는 그 말의 끝에서,
그녀가 자리를 떠날 것을 알았다.

호퍼의 여자처럼,
결국 그녀는
정지된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