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적 증오, 스펙터클 사회, 그리고 우리의 욕망
유튜브 알고리즘은 잔혹하다.
한때 ‘국민 멘토’로 추앙받던 백종원을 향해,
이제는 ‘허세’, ‘위선’, ‘자본 권력의 얼굴’ 같은 단어들이 쏟아진다.
단순한 비판을 넘어선 이 과잉된 부정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개인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시스템과 시대에 대한 좌절을, 한 인물에게 투사하는 유튜브적 편집과 대중의 무의식적인 감정 조절 장치다.
백종원은 단지 ‘버블이 끝난 상품’ 일뿐이다.
최근 유튜브에는 백종원을 비판하거나 해체하려는 콘텐츠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프랜차이즈 제국의 민낯”, “선한 척하는 위선자”, “백종원 따라 하면 망합니다” 같은 자극적인 제목이 난무한다. 영상 속 그의 발언은 맥락이 제거된 채 잘려나가고, 자막과 음성 톤은 그를 고압적이고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게 연출된다. 댓글창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 쏠린다. “이제야 진실을 안 것 같다”, “너무 떴더니 본색이 드러났다.” 분노는 손쉬운 클릭을 낳고, 그 클릭은 다시 분노를 낳는다.
물론 백종원의 언행이 항상 적절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방송과 콘텐츠 속에서 때때로 경솔하거나 일방적인 조언을 던졌고, 단정적인 화법은 실제 자영업자의 다양한 맥락을 지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책임을 백종원 한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은 온당한가. 우리는 그를 ‘신’으로 만들었고, 이제는 ‘괴물’로 규정하려 한다. 그의 조언에 감탄했던 이들이, 그의 식당에서 식사했던 이들이,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콘텐츠를 따라 하던 이들이, 이제는 돌을 던지고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투사’라는 개념이 있다.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결핍, 혹은 실패의 원인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심리 기제다. 백종원을 향한 유튜브적 혐오와 증오, 과잉된 해체 시도는 어쩌면 그 투사의 집단적 표출일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한 사람의 사적 존재가 아니라, 시대의 좌절이 향하는 방패막이로 기능하고 있다.
프랑스의 급진적 이론가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말한다. “실제 삶은 이미지로 대체되며, 진짜가 아닌 보이는 것이 진실처럼 작동한다.” 백종원은 요리 전문가이자 사업가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방송과 미디어의 스펙터클 속에서 ‘보이는 인물’로만 기능하게 되었다. 요리하는 장면, 훈계하는 장면, 멘토링하는 장면이 클립으로 잘려나가고, 인상적인 한마디는 밈으로 소비됐다. 그의 존재는 실체라기보다 이미지, 정체성이라기보다 서사였다.
그리고 그 서사는 어느새 무너지고 있다. 감동은 반복될수록 퇴색하고, 조언은 비슷해질수록 진부해진다. 자영업에 뛰어들었던 이들은 살아남지 못했고, 콘텐츠를 따라 했던 이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은 말한다. “그의 말대로 했는데도 망했다.” 백종원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라 실패의 증거가 되어버렸다. 성공 신화는 깨졌고, 깨진 신화는 비난의 표적이 된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떠올릴 수 있다. 그는 현대 사회를 ‘긍정의 과잉이 피로를 낳는 사회’라고 진단한다. 끊임없는 자기계발, 자기 계발, 자기 사랑, 이 모든 긍정의 언어는 스스로를 더 깊은 피로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 그 실패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책임으로 치환된다. 백종원은 그런 피로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구원자였고, 지금은 책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백종원이 아니라, 그를 만들어낸 구조다. 방송이 비운 공공의 자리에 그가 들어섰고, 정책이 외면한 자영업자 곁에 그가 섰으며, 국가가 하지 못한 조언을 그가 대신했다.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도, 이제는 괴물로 몰아가는 것도 모두 같은 시스템 안에서 작동한다. 우리는 그를 소비했고, 그를 통해 위로받았으며, 이제는 그를 통해 분노를 배출한다.
이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유사한 스펙터클은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스타 강사, 셀럽 의사, 미디어 재벌, SNS 인플루언서까지. 우리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띄울 때마다, 그 끝에는 항상 무너짐이 있었다. 무너짐은 그 사람의 탓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욕망의 방향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백종원이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가 지겨워졌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백종원은 변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왜 또 그런 존재를 필요로 했는가?"라고. 누군가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모든 조언을 구하고, 모든 실패를 덮어씌우는 방식은 지속 불가능하다. 우리는 다시 백종원을 만들 것이고, 또 다른 백종원을 욕할 것이다. 그런 반복을 멈추기 위해서는 구조에 대한 이해와 감정의 전환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공공의 안전망.
그것이 우리가 향해야 할 곳이다.
사진 출처= 백종원 유트뷰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