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주식 시장 뒤에서 펼쳐지는 삶의 비애
[작가의 말]
상장된 기업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적정 주가'입니다. 회사의 당기순이익, 부채를 제외한 자산의 규모, 현금 창출 능력(EBITDA) 등 다양한 재무지표들을 기반으로 적정 주가를 산출하는데 이것을 밸류에이션이라고 합니다.
이번 글 <유자는 스스로 와인이 될 수 없다>는 적정 주가와 밸류에이션 속에서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또 다른 이면을 조명해 보았습니다.
<유자는 스스로 와인이 될 수 없다>
'어머니! 저 합격했어요!!'
그렇게 우리 가족들이 모두 얼싸안고 소리 지르던 그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의 기억을 안고 직장 생활을 버텨온지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 간다. 여전히 서울의 하늘은 회색빛 온도로 나를 감싸고 있지만 나는 시골에 계신 가족의 화려한 희망이자 빛이다.
"김 대리! 출발 준비됐나?"
"아 네! 수석님. 차량 배차 모두 완료되었고, 선물도 총무부서에서 챙겼습니다. 장거리인데 제가 직접 운전하겠습니다."
"그래? 믿어도 되겠나?"
"그럼요! 이제는 자동차 시트에 제 번호 하나 할당받았습니다!"
"오! 좋아 좋아. 이제 진정한 증권맨이 되었구먼. 자. 출발하세!"
최 수석님과 나는 오늘 새로운 기업으로의 탐방을 떠났다. 실적 악화로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회사였는데 수석님께서 커버 제안을 받으시고 출장을 잡으셨다. 이미 이 쪽 산업 섹터에서는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관록과 명성을 가지고 계신 수석님이시니 커버 애널리스트가 필요한 기업에서 최 수석님을 찾는 것은 것 당연한 일이다.
4시간 가까운 운전을 마치고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 담당자와의 미팅이 종료되었고, 공장 견학까지 마쳤다. 일정이 마무리되었고, 나는 다시 차를 몰아서 서울로 향했다. 밤하늘은 어둑어둑해져 있었지만 같은 차선을 달리고 있는 차량들 뒤를 수놓은 붉은 미등의 행렬을 쳐다보면 항상 그것이 나의 열정인 듯 느껴졌다. 그런 생각 속에 주무시는 줄만 알았던 수석님이 말을 열었다.
"이제, 자네도 정식 애널리스트가 되어야 할 것 아닌가!?"
"아 수석님. 피곤하실 텐데. 주무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자네도 연차가 충분히 찼을 텐데... 기회가 있을 거야. 준비해. 시골에 여전히 부모님들 잘 계시지?"
"네. 덕분에 잘 계십니다. 수석님께도 항상 안부 여쭤보시고요."
"그래. 잘해드려. 부모님들 살아계실 때..."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오늘 우리 방문했던 회사 말이야. 종가가 얼마로 마무리했지?"
"네, 4,750원입니다."
"그래... 알았어. 나 좀 잘게. 운전 조심하고. 고생 많다."
출장 마친 다음 날, 수석님은 이미 새벽부터 출근해 계셨다. 어린 나보다도 훨씬 더 왕성한 체력과 근무 열정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진정한 프로페셔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프로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이 나를 좀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자, 나는 이제 이 회사에 대해 커버를 시작할 거야. 하지만 자네도 보았겠지만 이 회사는 성장률이 정체되어 있어. 그러니까 과다한 멀티플을 줄 수는 없지. 수익가치(PER)로 해서 한 8배 정도가 적정할 거 같아. 그러면 주식 가격은... 5,000원 정도가 되겠지?"
"네. 수석님."
"그래. 이걸로 회사 쪽에 우리 의견 전달해 주고, 회사에서도 별 말 없으면 이걸로 커버 리포트 올리자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회사에 대해 추가 커버를 맡게 되었다.
회사에 대한 리포트가 나가게 된 지 한 달 뒤, 갑작스럽게 회사의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종가는 10,000원을 뚫을 듯 말 듯 양봉과 음봉이 치열한 갈등을 하고 있었다. 수석님은 다급한 목소리로 회사에 전화를 하고 계셨다.
"네. 네네. 그러니까 회사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단 말씀이시죠? 아 네 잘 알겠습니다. 그저 시장에서 조금 과도하게 움직이는 것뿐이네요. 과거에 하셨다고 했던 사업이 갑자기 뉴스에서 재조명되었는데 사람들이 호재라고 받아들이더라는 말씀이시잖아요? 네. 알겠습니다. 네"
수석님은 다시금 차분해진 목소리로 돌아오셨다. 그리고는 나를 부르셨다.
"이 봐. 김 대리. 지금 자리에 있나?"
"네! 수석님. 바로 가겠습니다."
...
"리포트를 지난달에 냈는데 회사에서는 특별한 이슈가 없다고 해. 그런데 갑자기 시장에서 이렇게 과도하게 급등한단 말이지? 김 대리는 어떻게 생각해?"
"음. 아무래도 시장에서 사람들의 심리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적정주가 대비해서는 과도하게 올랐으니 아무래도 '매도' 쪽으로 의견을 내야 하는 것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아무래도 과도한 걸로 보이지? 그런데 우리가 지금 커버를 시작한 지 고작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단 말이야. 그런데 바로 '매도' 의견을 내는 것도 조금 고민되긴 해. 어때?"
"아 그 부분은 생각 못했었는데, 수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맞는 것 같습니다 야 아니면 맞는 거야?"
"아 네! 맞습니다."
"응 그래 그래. 우리는 애매하게 말하면 안 돼. 숫자는 명확한 거라고. 우리의 생각과 의견도 눈치를 살펴선 안되고 소신 있게 얘기해야 하는 거야. 그러니 이번부터 이 회사에 대한 리포트는 김 대리가 한번 해보는 게 어때?"
"네? 제가요?"
"그래. 김 대리. 이제 RA(Research Assistant) 역할 충분히 했잖아. 정식으로 애널리스트가 될 준비 해야 하지 않겠어? 이 회사 리포트부터 한번 해보는 거야."
"아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어차피 책임은 다 내가 지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럼 리포트 준비해 봐~"
정식 애널리스트라니... 드디어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만 같았다. 또다시 합격을 외치며 얼싸안았던 가족들과의 시간을 회상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 가족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나는 밤새도록 이 회사에 대한 리포트를 준비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최 수석님께 보고를 들어갔다.
"그래. 어디 한번 김 대리 첫 리포트 한번 볼까? 음 어디 보자. 아 그래 수익성에 대한 부분을 아예 제외시켰구나. 그렇지 이 회사는 자산이 있지. 그래 그전에는 성장성 없는 수익성에 중점을 두었지만... 자산가치(PBR)? 그래... 거기 본사 땅이 요즘 그 지역에서 떠오르는 상권이라는데 '미래 개발 가능성 및 재평가'라는 프리미엄 좀 얹고, 여기가 또 매출처는 안정적이니까 영업권에 '브랜드 가치'까지 좀 섞으면... 억지로 10,000원은 만들 수 있겠네. 이거 맹물에 색깔 뿌리고 설탕 타서 주스라고 우기는 것 같지만, 말은 된다. 그렇지?"
"네 제 생각에는 지금 바로 '매도' 의견을 낼 수는 없을 것 같고, 뭔가 지금의 주가에 대해 시장에 합리적인 설명을 하는 쪽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 아니. 아닙니다. 맞습니다. 합리적 설명을 해야 합니다. 지금의 주가가 과도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타당한 것이라고 시장에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논리 찾느라고 꽤나 고생 좀 했겠네. 어제 집에는 들어갔고? 아침에 이미 불 켜져 있던데?"
"아. 그냥 의자도 편한 거 같아서 잠깐 졸면서 보고서 마무리했습니다."
"고생했네. 이 보고서로 김 대리 나한테 품의서 하나 올려. 그리고 사우나 갔다 와. 좀 쉬고 와."
"아. 네 수석님. 감사합니다! 바로 품의서 상신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지난달에 적정 주가 5,000원이라고 제출된 회사의 커버 리포트를 적정 주가 10,000원으로 수정하였다. 리포트에 이름은 수석님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지만 내가 작성했다는 점은 내부 품의서에 남아 있었다. 이것이 추후 애널리스트 심사 때 나의 업무 근거가 된다.
사우나에 갔다 오는 길에 총무부서에서 근무하는 입사 동기 유 대리를 만났다. 사내 와인 동호회에서 만나 친해진 지 어느새 3년이 흘렀다. 같은 고향 출신인 데다, 서로 와인에 대해서라면 문외한이었기에 둘은 금방 가까워졌다.
"뭐? 적정 주가 10,000원 리포트를 냈다고? 그 회사가 그 정도야? 나도 그 회사 주주야. 근데 매년 버는 돈이 똑같아. 근데 적정 주가가 바뀐다고?"
"아니 뭐 나도 도저히 설명할 방법을 못 찾겠더라고.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뉴스 때문에 그 회사 주식을 사재기하는데 방법이 뭐가 있겠어?"
"아니 그럼 리포트를 내면 안 되는 거 아냐? 수석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는데?"
"응. 자산가치에 멀티플 한 거면 뭐 충분히 타당하다고 오케이 하셨지."
"아 정말? 넌 무슨 생각으로 그런 논리로 리포트를 낸 거야?"
"야, 유자가 스스로 와인이 될 수 있냐? 타고난 당분이 없으면 그까짓 설탕이라도 뒤집어써야지. 그게... 이 와이너리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자의 생존 방식이야!"
"야 이 녀석 정말... 암튼 고생했네! 잘되면 나중에 한 턱 쏴라!"
"그래. 너도 힘내라"
그리고 1개월 뒤, 회사의 주가는 30,000원이 되었다.
시장에서는 내가 쓴 보고서를 '성지'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이 애널리스트는 자산가치 너머의 미래를 볼 줄 안다"며 나를 찬양했다. 나는 무엇인가 썩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껍질의 두꺼움도 모른 채, 과육의 시큼함도 모른 채,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유자의 껍질부터 베어 물어버린 어리석은 아이가 된 거 같았다.
"김 대리!"
최 수석님이 불렀다. 그리고 나는 곧장 수석님의 자리로 뛰어갔다.
"당장 리포트 내린다고 회사에 연락해. 아 무슨 이런 잡주 같은 회사가 걸려가지고 피곤하게 만드는 거야?"
"아 네 수석님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마 리포트 내리면 왜 내리는지, 우리가 왜 이 회사에 대해 커버를 시작했고, 그리고 어떤 근거로 리포트를 제출했으며, 또 왜 리포트를 중단하기로 했는지 결과를 보고해야 할 거야. 그거 김 대리가 정리해서 나한테 상신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1개월 뒤, 다시 회사의 주가는 5,000원이 되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지난달에 제출했던 적정 주가 10,000원의 리포트를 보고서는 항의 투서를 넣었다. 우리 리포트를 믿고 샀다가 큰 손실을 봤다며 본사 건물 정문에서 피켓 시위하는 주주들도 늘어갔다. 결국 우리가 제출했던 리포트에 대해 내부 감사가 진행되었다.
감사부서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인터뷰를 위해 들어갔다.
"김 대리님. 자리 앉으시죠."
"네."
"애널리스트로 승진하기 위한 욕심에 다소 과하게 리포트를 작성하셨네요. 맞죠?"
"네? 아니 무슨 그런..."
"뭐 그럴 것 같아요. 보니까. 시골에 부모님도 본인이 부양하고 있고..."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본인이 유자 같은 인생이라고 얘기하신다면서요? 설탕 없이는 세상 밖에 나오기 어렵다는?"
"아니 그런 얘기는 또 어떻게..."
"자. 거두절미하고 어차피 이 리포트에 대해 수석님이 승인하셨지만 담당자는 김 대리 아닙니까? 이거 김 대리님이 초안 작성하신 거잖아요? 맞죠?"
"아... 네... 맞는데.... 그게..."
"자 그럼 사실은 확인되었고 여기 진술서 읽어보시고 서명하세요. 아. 읽어보기 전에 유자차 한 잔 드릴까요?"
사무실 캐비닛 위에 놓인 노란 유자차를 담은 유리병.
그 속에 비친 나의 눈물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