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잠시 살던 집

스물몇 살의 율량동 시대

by 임가영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아침부터 마음이 바쁘다. 골린이 낼 새벽 라운딩 가는 날이라 이른 아침 연습장 가서 운동을 하고 아들과 함께 안과로 향한다.

시아버님께서 백내장 수술을 하신다. 병실 소파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아버님께서 걸어 나오신다. 전보다 많이 야위신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수술 후 시부모님을 모시고 염소 전골을 먹으러 갔다.

"아버님 뭐 드시고 싶으세요?"
"응 염소" 아버님의 대답은 늘 한결같아서 좋다.




나의 시댁은 충북 청주에 있는 청여고 근처 율량동이다. 내가 잠시 살았던 동네. 무심천가에 큰 소갈비 집을 하다가 문을 닫고 쫓기듯이 급하게 이사를 왔던 그 동네.

2층은 주인댁이 1층은 부모님과 내가 살았고, 그 시기 제주 나인브리지에서 일했던 동생은 아주 가끔 집에 왔다.

70평대 큰 집에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변해버린 나의 20대. 어린 맘에 당시엔 친한 친구들조차 잘 만나지 않았고 지금 신랑인 b와 함께 그 시기를 보냈다.

경제적으로 하나둘씩 부족함이 드러났어도 내게 그 시절은 막연한 희망 같은 게 있었다. 아직 젊었고, 내 곁에는 b가 있었다. 갑자기 변해버린 일상에도 우리 가족은 서로 대놓고 말은 안 해도 이 시기를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연대감으로 무장돼 있었으니까.

집이 작아지니 생활 반경이 좁아졌고, 좁아진 시야로 바라보니 가족이라 해도 그간 내가 몰랐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곁에서 가장 큰 변화를 느꼈던 건 아빠의 일상이었다.

은행 지점장이었던 아빠는 늘 바빴고, 밤늦게 약주를 하고 들어오시거나 혹 집에 계신 날이면 낮잠을 많이 주무셨다. 그렇게 호기롭게만 보였던 아빠가 돋보기안경을 쓰고 혼자 바둑을 두신다. 대학 4학년 2학기 청주시청 공보관실에 공무직으로 취직을 했던 난 아침 일찍 출근을 하고, 엄마는 큰 갈빗집 여사장에서 율량동 김밥나라 종업원으로 하루를 보냈던 그 시절. 퇴근 무렵 집에 오면 당시 키우던 강아지 봄봄이와 뚝 떨어져서 바둑을 두셨던 아빠의 쓸쓸한 뒷모습이 생각난다.

나의 스물몇 살을 보냈던 율량동 시대.




공교롭게도 결혼을 하니 시댁이 율량동이다. 시댁에서 한 블록만 걸어가면 옛날 살던 빨간 벽돌집이 코앞인데 난 일부러 그 길을 피해 다녔다. 명절에 만두피가 떨어져 재료를 사러 갈 때도 아이들과 그 근처 놀이터에서 놀 때도 그 집은 내 기억 속에 부유하는 존재였을 뿐.




그러다 오늘,
안개비가 보슬보슬 내렸던 까닭일까?
시부모님을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그때 그 집이 가보고 싶었다.

검은 철문을 꽝 닫고 빨간 벽돌집으로 들어가던 그때의 내가 오버랩된다. 김밥 집에서 일하던 엄마를 마중 나갔던 그 골목길,

굳이 말은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가늠했던 빨간 벽돌집 거실의 그 공기.

그런데 그 동네를 세 바퀴 네 바퀴를 도는데도 그 집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내가 길치지만.... 어디로 간 걸까?

시청에서 받은 월급이 들어오면 "내가 쏠게" 하고
가족들과 함께 갔던 콩나물무침과 오이 반찬이 맛있었던 '불타는 삼겹살' 그 식당만 보고 왔다.

기억 저편 너머에 있는
나의 율량동 시대가 존재했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며
빨간불이 들어온 차 안에서 피식 소리 없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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