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텔라의 비밀

"내게 카스텔라는 쓸쓸함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어"

by 임가영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행여 그 사람을 잘 안다고 자부한 적이 있는가?


부모 자식 간이나 부부, 형제지간, 혹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라 할지라도 내가 알고 있는 게 다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녀 잠을 뒤척이다 노트북을 편다.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전부가 아닌 그 혹은 그녀가 숨기고 있던 수많은 모습 중 일부 지극히 단편적인 것에 그칠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회사를 관두고 나니 가족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 예전보다 많아졌다. 그래서 요즘 가족들의 모습을 관찰자적 시점에서 먼발치 떨어져 보니 그간 내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부모님은 나이가 드셔서 인지 예전보다 여러모로 약해지신 것 같고, 반면 11살 13살 남매는 하루가 다르게 힘이 세져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부모 그늘 아래서 벗어나 세상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려는 걸 느낀다. 뭐 b는 예나 지금이나 착하지만 고집스러운 가운데 쉽사리 예측을 못 하겠는 4차원의 남자다. 그래서 17년을 연애하고 근 30년을 알고 지내도 질리지 않는 장점은 있다.




쉼의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 질진 모르겠지만 집에 있는 동안만큼은 약속이나 볼일이 있더라도 아이가 집에 오는 시간만큼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두 팔 벌려 안아주려고 하는 편이다.

어릴 적 내가 학교 갔다 돌아오면 문을 여는 순간부터 집 안 가득 카스텔라의 달콤한 향이 코끝을 찔러 기분이 좋아졌던 것처럼.


엄마의 카스텔라.


수다스럽고 활기가 넘쳤던 나와 달리 엄만 늘 말 수가 적고 나와 함께 놀아주기보단 책 읽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 내심 서운하기도 했지만, 엄마가 해주는 갖가지 요리는 내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정감과 기쁨을 주었다. 그래서 내게 카스텔라는 엄마 냄새였다. 부드럽고 폭신한 카스텔라 한 입을 깨물면 입속에서 사르르 녹는 마법 같은 빵. 혹 학교에서 친구랑 다퉈 기분이 좀 좋지 않았다가도 엄마가 해준 간식을 먹으면 곧바로 행복해졌던 그 시절.


마흔이 넘은 성인이 돼서도 가끔 엄마가 해줬던 그때 그 카스텔라가 그립다.


"엄마 난 엄마처럼 요리를 잘 못해서 애들한테 좀 미안하기도 해. 엄마 카스텔라 냄새는 빨리 집에 오고 싶게 하는 맛이었다니까." 잠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엄마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엄마 우리 언제 한 번 다시 해 먹자."


"그래? 그랬다니 다행이네. 내게 카스텔라는 쓸쓸함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어"


예상치 못했던 엄마의 말에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뜨릴 뻔했다. 말을 이을 수 없어 가만히 듣기만 한다.


"아빠 직장 때문에 괴산이라는 시골 동네에 살게 됐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정 붙일 때도 없고 외로운 거야. 근데 은행일에 바쁜 아빤 임 상무가 아닌 술 상무라고 할 정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술이고. 그래서 가슴이 답답해 터져 버릴 것 같을 때, 난 카스텔라를 만들었어. 계란 한 판을 스테인리스 그릇에 다 깨는 거야. 그리고 그 계란에 거품이 생길 때까지 미치도록 돌리는 거지. 그렇게 팔이 빠져라 돌리다 보면 잡생각이 안 나. 어느새 쓸쓸한 기분 따윈 잊게 되거든. 게다가 노란 빵이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면 나빴던 기분도 좋아지거든.


'아... 엄만 그랬구나. 엄만 그때 쓸쓸했구나."


자식새끼들이 맛있다고 먹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내 나이와 비슷했을 한 여자는 계란을 팔이 빠져라 돌리며 마음속에 있던 헛헛함이 조금이라도 채워졌을까? 채워지긴 했을까? 그랬을까?




잠시 내가 예닐곱 살이던 그때로 기억을 돌이켜본다.

맞아. 소파에 책을 잔뜩 30cm 정도 쌓아놓고 조용히 책을 읽던 엄마의 모습, 클래식 CD가 가득했던 장식장에서 CD 한 장을 꺼내 기분 전환이라도 하듯이 음악을 들으며 뭔가 상념에 빠져있던 여자의 모습. 그러고 보면 내가 성인이 돼서도 가끔씩 엄마의 쓸쓸하고 슬픈 눈을 어느 순간 마주할 때가 있다. 난 그럴 때마다 그냥 지나치곤 했다. 엄마의 쓸쓸함을 나의 말로 확인하는 순간 너무 슬퍼질까 봐.


활발하고 밖에서는 진짜 상남자로 통하는 아빠와 조용하고 집에 있길 좋아하는 엄마, 정반대인 두 사람이 만나 한평생을 살면서 서로의 다름을 절절하게 깨닫는 그 순간이 얼마나 사람을 쓸쓸하게 하는지 그 둘은 알았을까?


아마도 아빠보단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엄마가 노을 같은 기분을 더 많이 느꼈으리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빨강도 아닌 주황과 보라 연핑크의 중간쯤에서 어두운 회색으로 넘어갈 때 그 기분.


"난 그래서 사실 카스텔라가 별로야"


내겐 그토록 행복하고 달달했던 카스텔라의 기억이 엄마에겐 공허를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던 도구였다고 생각하니 그 당시 엄마의 그 쓸쓸함이 내게 전이되는 것만 같았다.


엄마를 잘 안다고 자부했는데...


한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섣부르고 오만한 판단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서로의 다름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 거다.

아마도 바쁜 일상생활에 쫓겨 잠시 잊고 있었던 각자의 본래 모습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변화에 적응한다는 건 삶을 더 깊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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