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가시'를 뽑다.

여생백일장에서 모녀가 나란히 수상을 하다.

by 임가영

살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당혹스러운 사건과 마주했을 때 ‘선택적 함묵증’을 앓았던 중학교 시절의 기억이 소환되는 걸 보면 그때의 기억이 나에겐 트라우마로 남았나 보다. 만취 후 필름이 끊겨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어제의 일을 되돌아볼 때 잠깐잠깐 장면이 스치는 것처럼 그날의 기억은 내게 그런 형태로 남아있다.


안개가 자욱한 희미한 섬에 홀로 뚝 떨어져 있다 이가 날카로운 상어에게 물려 선명한 피를 본 뒤 정신이 번뜩 드는 꿈같은 이야기.


그런 나의 지난날의 기억들을 난 한 번도 글로 옮기지 못했다.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부터 갖가지 스티커로 장식한 포켓 다이어리, 세월이 좀 지난 후 싸이월드와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페이스북 등 다양한 형태로 그날의 일들을 기록하는 건 내 오랜 습관이지만 지난 40여 년 동안 그 일을 글로 적는 걸 스스로 금기시했던 거다.




3.1절 엄마와 함께 여성백일장에 나가기 전까까지는 말이다.

주중에 쏟아지는 일로 파절이가 된 내게 주말이라고 온전히 즐길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미용사 신랑을 둔 덕(?)에 주말에도 두 남매의 독박육아를 해야 했었다. 주중 퇴근 전까지는 엄마가 아이들을 돌봐주고 퇴근 이후와 주말 육아는 나 홀로 하는 건 한 집에 사는 우리 모녀 사이 국룰이 된 지 오래다.


그날도 오늘은 뭘 하며 아이들과 보낼까 고민하고 있는데 엄마가 3.1 공원에 글 쓰는데 같이 가자고 하신다.


“나 혼자 가기 좀 그래서... 충북여성백일장인데 한 번 같이 가볼래?”

“백일장? 나 초등학교 이후로 글짓기 대회는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데?”

“그래도 바람 쏘인다고 생각하고... 엄마 함께 공부하는 아줌마들도 함께 오니까 돗자리 펴고 일기 한 편 쓰고 온다고 생각하면 되지.”


웬일인지 마음이 격하게 동했다. 평소 기사 말고 진짜 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고 언젠가는 출간 작가가 되리라 야심 찬 포부도 있었지만 매일매일 기사 마감하고 집에 와서 집안일하기도 벅찬 나날이 이어져 그냥 꿈은 꿈이었을 뿐이었다.


필기도구와 돗자리를 챙길 때부터 벌써 마음은 작가가 되었다. 동화 속 빨간 머리 앤이 자작나무 속에서 다이애나와 시를 낭독하던 소녀의 마음이 되어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신문사가 주최하고 충북여백문화회가 주관하는 충북여성백일장. 신문사 주최라서 그런지 아는 기자가 보인다. 혹시 얼굴을 알아볼까 싶어 양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었으나, 혹시 백일장에 나갔다가 보기 좋게 떨어진 소식이 이 동네에 쫙 퍼질까 봐 인적사항 게시란에 필명을 적었다. 기자 동내는 소문이 그 어느 곳보다 빠르다.




옛 과거시험 볼 때처럼 시제가 적힌 종이가 눈앞에서 말려 내려온다. 이날 시제는 ‘가시’, 와 ‘거울’이었다. ‘가시’란 단어를 본 순간 그토록 떠올리기 싫었던 나의 트라우마를 이제는 꺼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지우고 싶었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니 신기하게도 그날의 날씨, 그날의 마음, 그토록 無의 시간이 되고자 했던 나의 시간들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그려졌다. 막힘 없이 그날의 기억들이 글이 되어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마무리 하고 옆을 슬쩍 보니 백일장에 자주 나와 본 사람들일까? 미니 책상까지 가져와 빠르게 아주 편한 자세로 글을 쓰고 있는 거다. 쭈그리고 앉았다 무릎에 기대었다를 반복하며 시간 내에 현장에서 원고지에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마침표를 찍고 나니 난 어제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태어난 것만 같았다.

심장의 우심방 우심실에 콕 박혀있던 해 묻었던 가시가 이제야 기분 좋게 빠졌다.


그날 우리 모녀는 충북여성백일장에서 나란히 수상을 했다. 43살 생일 주간이었는데 그 어느 해보다 값진 선물을 받았다. 평생 잊지 못할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