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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Dec 22. 2024

누군가 널 위하여

마티아스 뇔케의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를 읽고

목사님께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충북대학교병원 '환우 위안의 밤' 진행을 맡아달라는 메시지였다. 책상에 앉아 전화기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선한 일임이 분명한데 순간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송년의 밤 행사에, 연말 각종 시상식에 참석하는 일도, 누군가와 사진을 찍을 때도, 글을 쓸 때조차 난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왜냐하면 '탄핵 정국' 속에 자칫하면 공격의 대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날아오는 돌을 맞고도 힘주어 목소리 낼 수 없어 가슴이 답답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썼다 지웠다를 몇 번씩 반복한다. 선출직을 보좌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사방을 살펴야 하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함께 지혜를 모아 혼돈의 시기를 헤쳐나가야 하고, 지금도 지구가 도는 것처럼 그렇게 각자는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흥분에 찬 목소리로 독이 되는 말을 뿜어대고 있다. sns만 보아도 각각의 진영논리에 맞춘 독기 품은 언어들이 세상을 둥둥 떠다닌다. 탄핵 정국이란 혼란을 타이밍 삼아 그들만의 논리를 무리하게 끼워 맞추고, 프레임을 씌워 공격을 일삼는다. 그들의 언행은 하나같이 과장되어 있다. 자연스럽지 못하다.

마티아스 뇔케는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란 책에서 '사회적 지위를 두고 벌이는 게임'에 대해 말한다.

 

모든 과장된 언행의 배후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언제든 대체될 수도 있고, 잉여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 말이다.   p41~42



자신도 언젠가는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과장된 언행.


우리는 계속해서 이런 말을 듣는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정체해선 안 된다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그 자리에 있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야만 하는 붉은 여왕처럼 우리 역시 치열함을 강요받는다. 그러지 않으면 점점 늘어나는 패자들의 무리에 줄을 서게 되니까. 시스템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 더 이상 불러주지 않는 사람,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티아스 뇔케는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p42~43


기자 시절 혹자는 날 두고 '공격수'라고 불렀다.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가차 없이 날 선 글로 비판과 지적을 일삼아서일까?

'뭔가 잘못됐어. 바꿔야 해'란 신념으로 정신없이 달려왔던 지난날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거울 속 내 모습은 가시처럼 날카로웠고, 나도 모르는 새 점차 소모되고 있었다. 내 영혼의 점멸등이 깜빡일 때즈음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이렇게 보낼 순 없었다. 갑자기 스치는 얼굴이 있다. 밉다. 단순히 미운 차원을 내 안의 숨겨져 있던 분노와 증오가 차오른다. 그러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한다. 결국엔 측은지심에 다다른다.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가 필요하다.



 

일정표를 보니 마침 저녁 행사가 없다. 목사님께 잘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신이 나서 '제32회 충북대학교병원 환우 위로의 밤' 진행 멘트를 써 내려갔다. 20년째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충대 병원을 오간 탓에 이곳은 나에게도 특별한 공간이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을 보며 자신을 위안 삼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고, 말투는 딱딱하지만 환자들을 진심으로 살펴주시는 퇴직하신 교수님이 보고 싶기도 했다. 겨울이면 묵은 기침으로 들락거리며 지쳐 갈 때 병원 복도에 환우들을 위한 작품들을 보며, 우연히 마주한 공연을 보면서 위로받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아무쪼록 내가 그랬던 것처럼... 병원 로비에 모인 많은 분들께 위로와 사랑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링거를 꽂고 깁스를 한 채 제일 앞줄에 앉아계신 환자 한 분이 눈에  띈다. 아름다운 하모니가 흘러나오는데도 굵게 패인 주름 사이로 찡그린 표정이 하도 어두워 행하면서도 내내 눈길이 갔다. 그런데 오카리나팀의 '루돌프 사슴코'가 나오자 그 어르신 표정은 그대로지만 깁스 사이로 삐죽 나온 발가락이 리듬에 맞춰 까딱까딱 춤을 추는 게 아닌가? 감동적인 순간이다. 테너 강대헌 씨가 부르는 '누간가 널 위하여'가 병원 구석구석을 가득 메울 땐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신이 지쳐서 기도 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그리고 진심을 다해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꼭 기독교를 믿지 않으시더라도, 세상에는 나 혼자인 것만 같아도,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는 한 사람은 있다는 걸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글을 마친 순간 차창 밖으로 눈이 쏟아진다. 바깥은 온통 하얀 눈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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