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30분 거리, 연휴 풍경
연휴 내내 쉰다는 게 이상했다. 방송국에 다닐 땐 늘 연휴를 쪼개 당직을 서곤 했는데,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고 나니 주체할 수 없는 긴 연휴가 오히려 감당이 되지 않는다. 하루이틀은 밀린 집안일을 하고, 친정엄마와 마트며 시장을 다니느라 분주했지만, 결국 하루는 아팠다. 크게 아픈 건 아니고, 종일 졸리고 몸이 뻐근해 마치 자석이 밑에서 끌어당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있으면서도 침대에만 누워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워 아이들이 신경 쓰였지만, 아들은 게임 삼매경, 딸은 친구들과의 수다에 푹 빠져 있어 나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b 또한 명절 전 손님들로 바쁘다. 모두가 제각각의 시간을 보내는데, 나 혼자 괜히 불편한 마음을 안고 누워 있었다.
긴 연휴가 낯설고 답답해서, 무심히 b에게 말을 꺼냈다.
“제사 끝나고 근처 글램핑이라도 갈까?”
시댁과 친정 눈치를 살피느라 머뭇거리다 던진 제안이었는데, b는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좋지. 너 힘들었잖아.”
그때부터 폭풍 검색. 삼십여 곳을 둘러봤지만 단 한 곳만 자리가 남아 있었다. 집에서 불과 30분 거리, 오창. 조건도 시설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불멍’이 하고 싶었다. 타닥타닥 타는 나무 소리, 은은한 냄새,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며 밤을 새우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 대신 타다다닥 텐트 치는 소리, 그리고 빗소리였다. 옆 텐트의 말소리마저 삼켜버릴 듯 쏟아지는 비. 그럼에도 시원한 빗소리에 마음이 풀렸다. 명절에 여행 떠나는 사람들을 뉴스로만 보며 은근히 부러워했는데, 나도 이렇게 작은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천막을 두드리며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켜버렸다. 타닥이는 불꽃은 없었지만, 그 대신 쏟아지는 비가 내 마음을 말없이 적셔주었다. 인생은 언제나 내 뜻대로 흘러가진 않지만, 순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 속에서 의외의 길이 열리곤 한다. 빗속에서 나는 오래 묵은 짐을 내려놓은 듯한 해방감을 맛보았고, 그 자리에 고요히 스며드는 작은 깨달음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