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와 골프 사이

여러 날 가운데 좋았던 순간, 첼로를 다시 꺼냈다

by 임가영


그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도 살아오면서 숱하게 지나온 여러 날 들 가운데 특별히 좋았던 순간을 다시금 소환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내겐 어릴 적 떠먹는 요구르트의 원조 격인 '요플레'를 처음 맛본 순간이 특별하게 좋았던 기억 중 하나이다. 조그만 흰색 스푼으로 푸딩 같은 딸기맛 요거트가 부드럽게 입에 닿는 순간 밀려오는 시큼한 달콤함이란 35년 전 8살 꼬마 아이에겐 너무나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시골 괴산의 아파트 앞 작은 슈퍼에서 첫 대면을 한 '요플레'는 맛도 맛이지만 입을 모았다 입술이 닿는 순간 발화되는 그 이름도 뭔가 멋들어지고 세련되게 느껴졌었다.


처음에는 엄마 거랑 내 거랑 두 개를 사 왔다가 그 맛에 반한 뒤 각각 2개씩, 4개를 요거트 껍질까지 핥아먹으며 단숨에 해치운 뒤 슈퍼로 또 사러 갔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30대 초반이던 엄마와 8살 꼬마이던 난 "어쩌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냐"라며 그날 연달아 10개 정도의 요플레를 먹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마흔넷이 된 지금도 빙그레의 딸기맛 요플레를 보면 간식 하나로도 너무나 행복했던 엄마와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 인생의 절반 이상을 커트 머리로 지냈던 내가 유일하게 라푼젤처럼 긴 머리를 하고 내 키 정도의 첼로를 갖고 오케스트라 합주회 무대에 올랐던 국민학교 4학년 시절도 가끔 떠오르는 달큼한 선물 같은 기억 중 하나다. 강당에 모여 친구들과 합주 연습을 하던 기억도 좋았고, 오선 위의 낮은 음자리표를 읽어나가며 활에 닿는 첼로의 중저음이 좋았다.




승진 시험을 보기 위해 워킹맘인 난 한동안 퇴근 후 집안일을 마치고 애들이 잠이 들면 토익 공부를 했다. 대학생 시절엔 약간의 요령만 익히면 수월하게 풀 수 있었던 LC도 어찌나 헷갈리던지... 완전한 문장을 들어야 문제를 풀 수 있게 꼬아 놓은 문항도 여럿 있어 리스닝 문제를 듣고 또 들었다. 승진을 하려면 취재도 해야 하고, 회사에서 팔던 인터넷 영업 실적도 있어야 하고, 결정적으로 승진 조건이던 토익 시험 커트라인 점수를 넘어야 했기에 난 밤늦게까지도 눈을 비비며 토익 문제집을 두 권이나 풀었다. 일정 점수 이상 토익 점수도 나왔고, 영업 실적도 눈에 띄진 않았지만 기본은 했고, 취재도 평타 이상은하고 있다고 자부했기에 이번에는 꼭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또 승진에서 물을 먹었다.



다른 지역 케이블방송은 일정 기간만 지나면 대리를 다는 것 같았는데 유독 충북방송 보도팀은 승진에 박했다. 일반 사원에서 주임, 주임에서 대리를 달기까지 8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여자 과장을 달기까지 꼬박 15년이 걸렸으니까.


과장 승진에서 또 밀린 날, 화가 나기보단 상실감이 컸기에 답답한 그 마음 상태로 그냥 집에 갈 순 없었다.


우회 도로를 달리다 본능적으로 악기점 거리가 있는 예술의 전당 쪽으로 차를 돌렸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던 날. 난 첼로를 샀다.



일단 첼로를 먼저 사고 그 이튿날부터 어디서 언제 어떻게 배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복잡하고 헛헛했던 마음도 첼로를 생각하니 조금씩 수그러들었고, 우연찮게 '문화다이어리' 취재 때 만난 j 피아니스트에게 첼로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그렇게 난 늦은 저녁에도 배울 수 있는 개인 레슨을 일주일에 한 번 하기로 했다.


5년 전 나의 첼로는 이렇게 시작됐다.


신기하게도 어릴 적 배웠던 활 긋기와 운지법, 미뉴에트의 선율을 내 몸이 기억했다. 어릴 적 괴산 시골에서 청주까지 올라와 엄마와 함께 갔었던 미샤 마이스키의 강렬했던 연주회도 다시금 떠올랐다. 첼로를 잘 하진 못해도 늦은 저녁 연습을 하고 있을 땐 편안하고 행복했다.


기자 생활을 하며 지치고 힘에 부칠 땐 첼로의 낮은 소리에 기대어 날 위로하기도 하고,

나의 취재 방향과는 달리 내 기사가 데스크에게 칼질을 당하거나 출고되지 못했던 어느 날에는 뭉쳤던 화 덩어리를 푼다며 첼로보다 더 비싼 첼로 케이스를 사는 것으로 내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직장 생활과 이어지는 집안일로 평일에 연습을 못 하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곡이 어려워지자 첼로 또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이와 함께 맞물렸던 코로나19 시기도 나와 첼로를 멀어지게 하는 이유라면 이유였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점점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선 내게 첼로를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잦은 음주로 점점 배둘레햄이 되어가는 나의 질주를 막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골프. 남동생이 골프 레슨을 계속해왔기에 골프에 대한 로망보다는 뭔가 때려 내려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아마도 이 시기부터 나의 마음 상태가 위태로웠던 전조를 보였던 게 아닐까?


그렇게 시작한 골프는 화장대 옆에 먼지가 쌓이도록 오랫동안 서 있던 첼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미치게 재밌었다. 탕하고 공이 맞는 소리도 좋았고, 땀 흘리며 운동을 하니 스트레스도 풀리는 듯했다. 여기다 좋은 분들과 동생까지 함께 한 첫 라운딩의 짜릿함을 겪고 나니 첼로는 사실 안중에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거뜬히 몇 년은 첼로를 쳐다보지도 않을 줄 알았다. 가끔 자기 전 서 있는 첼로 케이스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미안. 어쩌냐? 난 지금 골프가 너무 좋은데... 넌 좀 나이 더 들고 여유 생기면 열어볼게' 혼잣말을 하기도 했으니까.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쯤 필드에 나가면 이 정도 스트레스는 감내할 수 있다고 여겼던 나의 자만은 산산이 부서졌다. 골프공이 잘못 맞아 팔이 찌릿하게 아픈 것처럼 '아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을 정도의 현타가 찾아왔다. OB가 나 깊은 산속으로 빠져버린 로스트볼처럼 도저히 사무실에 한순간도 있기 싫은 순간이 와 버린 거다.


그렇게 사직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4주째 접어드는 날 백화점 문화센터 소수 정예 첼로 강좌에 등록했다.


골프로는 대체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달래줄 수 있는 건 첼로였던 거다.


그렇게 거의 1년 만에 다시 꺼낸 첼로.


굳어진 연주 실력으로 지금은 1년 전 배웠던 스즈키 3권의 '스케르초'를 다시 연주하고 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첼로와 마주하는 그 순간은 인생을 살면서 여러 날 가운데 좋았던 그날들을 다시 꺼내보는 일처럼 편안하고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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