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이 있어야 인생에 참 맛을 안다
회사에 나가지 않은 지 4주째.
그동안 가장 크게 깨달은 건 이 말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너무 흔한 말이지만, 그 문장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과 고통이 필요했다.
모든 게 무너진 것처럼 느껴지던 날들,
광활한 우주에 혼자 남겨진 듯 막막했던 마음도
조금만 지나면 또 다른 우주가 펼쳐진다는 걸
조금씩 믿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책 속 한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가족이나 친구의 말 한마디가,
혹은 넷플릭스 한 편이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는 빛이 되었을 것이다.
내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그랬다.
기도하듯 마음을 정리하고,
그 마음을 글로 풀어내는 시간.
그렇게 조금씩 정리가 되자,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위로와 손길들이
하나씩 마음에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내가 너무 오래 바쁘게, 너무 오래 혼자였다는 걸.
그 무렵, 아빠는 고관절 수술을 받고
며칠 만에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가셨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처음으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여보, 왜 그래? 꿈꾸냐? 왜 웃어?”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이 물었다.
“그냥 좋아서. 이 시간에 누워 있는 게 신기해서.”
꼬박 한 달 만에 느껴보는 진짜 자유였다.
낯선 여행지가 아니라,
매일 잠들던 이 침대 위에서 느낀 자유.
기분이 좋아서 다시 일어났다.
거실에 나와 뉴에이지 음악을 틀었다.
이루마의 ‘회상’이 흘러나왔다.
청소기를 돌리며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탔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음악이 더해지자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신생아였던 둘째가 울 때 들려주던 백색소음,
그땐 아무 효과도 없었는데
지금의 내게는 이상하리만큼 위로가 되었다.
머리카락을 삼키며 돌아가는 청소기와 함께
나는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았다.
저녁이 되어 엄마가 된장찌개를 끓이셨다.
곁에서 도와드리겠다고 서 있자
엄마가 말했다. “자, 된장찌개 끓이는 법 알려줄게.”
“뽀얀 쌀뜨물에 멸치가루 한 숟가락 넣고,
냉장고에 된장이라고 써 있는 통 꺼내봐.”
냉장고 안엔 반찬통마다 라벨이 붙어 있었다.
열무김치, 고추장, 겉절이…
엄마의 글씨를 보는 순간 울컥했다.
잠깐 울컥할 틈도 없이
엄마의 주문은 이어졌다.
“파는 나중에!”
“넵, 엄마!”
밥과 찌개, 부침이 동시에 익어갔다.
기름은 손에 튀고, 냄비는 끓고,
나는 그 와중에 설거지도 했다.
“그릇은 바로 씻어야 해. 그래야 나중에 덜 힘들어.”
엄마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이 어쩐지 따뜻했다.
저녁상이 차려졌을 때,
나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엄마, 나의 엄마, 우리 엄마.
기자로 일하며 바쁘게 살던 동안
이렇게 느낀 적이 있었을까.
이제야 비로소,
엄마가 나에게 전해온 시간의 무게를 알 것 같았다.
마흔넷의 딸이 일흔을 앞둔 엄마에게
된장찌개 끓이는 법을 배우는 시간.
그 하루를 살아보니,
여백이 있어야 인생의 참맛을 안다는 말이
이제야 마음 깊이 와 닿았다.
내게 주어진 이 시간,
이 하루,
참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