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을 대하는 부모 자식의 온도 차

부모님께 잘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건 착각이었다.

by 임가영


아이들은 학교로 b는 일터로 나가고 부모님은 아직 주무시는 고요한 아침이다.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뭔가 더 뭉클하고 애틋한 것 중 하나가 부모님 생신이다. 어제는 아버지의 칠순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아버지 친구분들을 모시고 칠순 잔치를 할 예정이었지만 인생은 늘 그렇듯 계획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


"엄마 가랜드에 밤사이 할아버지 70에 0자가 떨어져 나갔으니 할아버지 일곱 살이네."


졸지에 일곱 살이 된 할아버지를 생각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열한 살 딸 아인 까르르까르르 한참 웃더니 집을 나선다. 7이란 숫자를 가만히 보며 일흔을 맞이한 아빠에게도 내가 모르던 일곱 살이던 시절이 있겠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하다.



동생네까지 대가족 9명이 모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가득 찬 정갈한 음식과 술을 함께 하며 우린 정말로 행복했다.




어제 찍었던 파티 동영상을 다시 본다. 다들 신이 나 박수를 치면서 알레그로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유독 아빠의 얼굴은 슬로모션을 건 듯하다. 꼭 지난 70년의 삶이 고스란히 스치고 지나가듯 벅찬 미소가 주름진 얼굴 사이로 잔잔하게 퍼진다.




동생네는 우리와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산다. 아빠의 칠순 날 아침상을 준비하시던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살면서 아침밥 먹으러 오지 않는다며 내심 서운한 티를 팍팍 내신다. 어버이날이나 생일 같은 기념일이 돌아오면 우리 부부는 둘 다 일을 해 퇴근 후 부랴부랴 식사 자리에 참석하거나 기념일이 다가오기 전 주말에 부모님을 모시고 밥을 먹곤 했다.


그런데도 늘 부모님은 옆 동에 사는 아들이 아침이나 점심을 함께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을 종종 토로하시곤 했다. 급기야 오늘은 "얘 아빠 칠순인데 옆에 살면서 아침 먹으러도 안 오냐?" 동생에게 전활 걸어 섭섭함을 털어놓으셨고, 갑작스러운 엄마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부랴부랴 아침밥을 먹으러 온 동생은 밥을 먹는 내내 입이 열댓 발 나왔다.


단출히 넷이 앉아 밥을 먹는데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와 동생 모두 결혼하기 전 넷이 함께 살던 그 시절. 이젠 한 가정의 가장이 된 남동생과 두 남매의 엄마이자 아내가 된 난 사실 부모보단 자식 챙기기에 더 마음을 기울였던 게 사실이다. 서먹한 아침밥을 먹고 동생과 엄마가 짧게 나눈 대화 속에는 각자가 마음속에 가졌던 서운함이 가슴에 활이 되어 꽂혀 맞는다. 어라 근데 그 화살이 갑자기 내게 조준이 됐다.


"사실 너도 지 아들 생일이라고 연차 내고 생일상 차려 준 적은 있어도 우리 생일 때 연차 내고 상 차려준 적 있어? 저녁이나 함께 먹고 말았지" 갑자기 몇 년 전 아들의 첫 번째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 휴가를 냈던 기억이 소환이 되며 '아차 엄마는 그때 서운했구나' 무릎을 쳤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엄마의 화살을 맞으며 남매는 사실 어리둥절했다. 그동안 부모님께 최상급은 아니지만 때 되면 기념일 챙겨드리고 그 어느 가족보다 여행도 자주 가고, 나야 뭐 집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니 적어도 남들보다 평균 이상은 잘한다고 여겨왔었기 때문이다.


"아빠나 너희들 생일상 차리는 건 늘 다반사지만 내가 먹자고 내 생일 상차림은 못 하겠더라"


엄마의 이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엄마가 원했던 건 선물도 돈도 아닌 자식이 핸드폰 레시피 보며 애면글면 끓여낸 맛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난 생일상이 아니었을까?


부모는 나이가 들수록 아이 같은 마음이 되고, 복잡한 세상에 챙길게 점점 많아지는 자식은 큰 원 안의 든 사랑을 온전히 부모에게 쏟지 못하고 쪼개고 또 쪼개서 쓴다. 그래 그거였다. 내 자식이 학교 갔다가 돌아오면 "오늘 하루는 어땠니? 수업은 재밌었어?" 내가 보지 못한 아이의 하루를 알고 싶어 안달이 나면서도 정작 부모님이 외출하고 돌아오시면 말 한마디 따뜻하게 물어보지 못했던 게 다반사였다.




오전에 서먹했던 집안 공기를 바꾸기 위해선 뭔가가 필요했다. 이미 동생네랑 함께 모은 돈으로 돈 부채와 수제 케이크를 주문해 놨고, 말띠인 아빠를 위해 맥간 공예를 하시는 민선희 작가에게 작품도 구입해 놨지만 이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기 위한 히든카드가 필요했다.



'아 맞다! 꽃이 빠지면 안 되지?' 집 근처 꽃집에서 한 아름의 풍성한 꽃다발을 주문하고 아빠가 끔찍이도 아끼는 손녀딸에게 꽃다발을 드리도록 했다. 역시 적중! 아빠가 해맑게 웃자 엄마도 따라 웃는다.



서로의 진심이 오갔던 아침의 차가웠던 온도는 손주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사위와 며느리까지 대가족 9명인 완전체가 되자 급속도로 뜨겁게 올라갔다. 셀카봉을 놓고 칠순 잔치 사진을 찍고 또 찍는다. 식탁 양 끝을 장식한 화려한 꽃병과 폐가 터져라 불어 된 풍선(난 COPD 천식 환자다) 엄마의 손길로 담아낸 진수성찬에 생일 노래까지 집안 가득 우렁차게 울려 퍼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이게 가족이구나.


그 이름도 빛나는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