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겐 아름다운 것만, 예쁜 것만 보여주고 싶어. 굳이 보지 않아도 될 시체도, 썩은 내 진동하는 사람들도 넌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고 현장의 냄새, 상주의 울음소리는 오래 떠나지 않아. 그래서 네게 권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 바로 기자야.”
잠든 줄 알았던 딸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데, 아이가 눈도 뜨지 않은 채 대꾸했다.
“엄마, 나도 기자는 싫어. 그니까 걱정 말고 얼른 자.”
어린아이 치고 지나치게 시크한 반응에 내가 더 민망해졌던 밤이었다.
그런데 기자를 그만두던 날, 딸의 마음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엄마, 기자 계속하면 안 돼?”
이불속에 파묻혀 꺽꺽 울던 아이를 보며 그제야 알았다. 딸에게 기자라는 직업은 단순한 엄마의 일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서툰 간식을 준비하다 잠시 침대에 누워 잠이 든 날,
생활의 자리가 비어 있던 두 달째였다.
“우리 엄마 진짜 백수 다 됐구나. 언제까지 놀 생각이야?”
아이의 농담에 웃었지만, 직업이 사라진 자리의 공기는 생각보다 컸다.
교육청 비서관 2년 차가 될 무렵 딸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처럼 좋은 정보만 골라 건네고 싶었다.
“자연과학교육원에서 이런 체험도 한대. 이렇게 공부하면 좋을 것 같은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내게 딸은 고개를 저었다.
“엄마 교육청 가더니 이상해졌어.”
시간이 흘러 비서관 생활도 마무리되고, 나는 다시 낯선 결정을 앞두게 됐다. 이번엔 딸의 반응이 궁금하면서도 두려웠다. 그런데 아이는 일주일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기자를 그만뒀을 때와는 전혀 다른 침묵이었다.
어느 저녁, 딸이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엄마, 정치 안 하면 안 돼?”
열네 살 아이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축 처진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 고심한 얼굴로 아이는 말했다.
“엄마, 현수막에 싸우는 말은 안 쓸 거지?”
“엄마 얼굴은 크게 안 나오지?”
짧은 질문 속에서 아이가 매일 보는 세상이 스쳐 갔다. 상대를 조롱하는 말들, 과장된 혐오와 희화화된 밈, 질문만 쏟아붓고 답할 틈은 주지 않는 말싸움, 자극적인 장면만 반복되는 숏츠. 아이가 손 안의 휴대전화로 매일 마주하는 정치의 얼굴이었다.
그날 밤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딸의 눈에 비친 정치 앞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회를 기록하던 기자로, 교육 현장에서 사람들을 잇던 비서관으로, 비교적 괜찮은 엄마이자 직업인으로 기억되던 내가, 이제 ‘정치’라는 이름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의 질문은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기준이 되어야 한다.
민생 대신 정쟁의 도구가 되는 언어를 쓰지 않는 정치, 보통 사람의 삶을 빛나게 하는 정치.
일주일을 고민하며 조심스레 물었던 딸의 목소리와 표정을 나는 오래 기억하려 한다.
*충북일보 2026.02.18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