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

by 임가영

어스름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길을 나선다. 매일 지나던 거리의 신호등도, 무채색 아스팔트 위로 비추는 가로등도 꼭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환경미화원의 뒷모습. 고요하게 멈춘 시간 사이로 구석구석 빗질을 하듯 거리를 쓸던 그 쓸쓸한 뒷모습은 아직도 잔상으로 남아 있다. 가끔 일이 힘들 때면 새벽에 보았던 그분이 떠오른다. 20년 전 생방송으로 아침 방송을 진행하던 시절의 기억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인데도 요즘 내가 마시는 새벽 공기는 사뭇 다르다. 선거철이 되면 피켓을 목에 걸고 90도로 허리를 굽혀 아침 인사를 하던 정치인들의 모습을 취재수첩에 담아왔었는데, 이제는 내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눈다. 쌩쌩 달리는 6차선 거리에서 오가는 차량을 향해 수없이 고개를 숙이며 선거판에 뛰어든 후보들. 저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보은의 장날은 새벽인데도 고요한 활기가 움트고 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호시절만큼 재래시장이 북적이지는 않지만 시골 장터의 새벽 풍경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트럭에서 뻥튀기 박스를 꺼내는 노부부, 차가운 보도블록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냉이 나물을 다듬는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하다.

유독 빨갛게 반짝이는 딸기를 보고 "어머니 이거 얼마예요·" 하고 물으니 "아가씨가 마수걸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사 가지고 가"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 말에 웃으며 딸기 봉지를 집어 든다.

시장은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 해도 제대로 뜨지 않았지만 상인들의 손길은 이미 분주하다. 좌판을 펴고, 박스를 정리하고, 서로 안부를 건네며 장터의 아침을 연다. 화려한 말도, 거창한 구호도 없지만 그 안에는 하루를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묵묵한 의지가 담겨 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재래시장의 새벽이다. 마치 관찰 카메라를 켜고 세상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기분이다. 조금만 귀를 기울여도 주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우. 왜 이렇게 비싸·" "이거 팔아도 남는 것도 없어유."

정당 점퍼를 걸친 예비후보들이 지나가면 충청도 특성상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진 않아도 애정 섞인 꾸짖음을 건네는 어르신들이 더러 계신다.

"제발 좀 싸우지들 말고 정신 차려."

애정 섞인 꾸짖음에 한 번 더 마음을 다진다.

새벽의 공기는 늘 정직하다. 아직 하루가 시작되기 전이라서일까. 사람들의 말도, 마음도 조금 더 솔직하게 들린다. 누군가는 새벽 거리를 쓸고, 누군가는 장터에 물건을 풀고, 또 누군가는 하루의 생계를 위해 길을 나선다. 세상은 그렇게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생각한다. 정치란 거창한 구호보다 이런 새벽의 마음을 닮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길 위에서 오늘도 나는 그 새벽 공기를 다시 들이마신다. 세상이 움직이는 가장 조용한 시간 속에서.



*2026.03.18 충북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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