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값하네

by 임가영

어렴풋한 기억으론 호수가 훤히 보이는 잔디밭에서 엄마와 함께 무언가를 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김밥을 싸들고 소풍처럼 엄마랑 처음 나갔던 백일장이었다. '꼴값하네'의 근원을 만들어 낸 사건이기도 하다. 유년시절 내가 기억하는 엄만 소파에 잔뜩 쌓아놓고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어린 내가 보기엔 어쩐지 즐거워 보인다기보다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해 선뜻 말을 걸면 안 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아빠를 닮아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이었던 난 엄마가 틈만 나면 책을 읽는 게 별로였다. 나랑 놀아줘야 하는데 책을 읽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 그 아이가 자라 엄마가 되고 나선 예전의 엄마처럼 책을 읽고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읽기도 하지만 나의 독서의 대부분은 현실에서 마주한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을 잊기 위한 도피처였다. 차분히 활자를 따라가다 보면 갑갑했던 현실의 벽도 어느새 스르르 무너져 책 속에 다른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현실에선 금기시 됐던 사랑도 자유롭게 상상해 보기도 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군상의 복합적인 모습도 왜 그런지 가늠해 본다. 그런 엄마를 닮아 난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이 덕분에 기자생활을 하며 20년간 밥먹이를 해왔다. 내가 직장에 다녀 나 대신 아이 둘을 보느라 집안일에서 해방되지 못했던 엄마는 첫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 글쓰기 평생교육원을 다니시기 시작했다. 이후 독서클럽에 나가기도 하고, 예전처럼 책을 주문하는 횟수가 늘었다. 엄마의 취미생활이려니 했는데 언젠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사실 여섯 명이 사는 복작복작한 집에 엄마의 책상이 들어온다고 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아빠 서재에서 쓰면 되지. 엄마 책상이 왜 필요하지?'였다. 책상이 도착한 난 곧 일흔을 앞두고 있는 엄마는 아이처럼 설레며 기뻐했다. 그 이후로 엄마의 책상엔 그 옛날 내가 어릴 때처럼 책이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고, 노트북도 새로 장만하셨다. 퇴근 후 들어오면 엄만 자신이 쓴 글을 보여주며 '저장이 잘 안 된다. 이메일을 보내야 하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꺼졌다'는 등 곧 답답해 죽을 것만 표정을 하곤 했다. 젊은 때는 거의 밖으로만 도셨던 아부지는 부인이 자신과 놀아주길 바라는 듯한데 매일 아내가 책상에 쭈그리고 앉아 뭔가를 쓰고 있으니 '글쟁이 다 됐네'라며 비꼬기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산문학상'을 타게 됐다고 하시더니, 급기야는 한국산문 신인상을 타러 서울 호텔로 가신다는 거다. 정치인이 된답시고 매일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난 일찌감치 엄마에게 시상식에 못 간다고 말씀드렸는데 많이 서운해하는 눈치셨다. 동생이 보내온 시상식 사진은 생각보다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놀랬고, 사진 속 엄마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우아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잠들기 전 한국산문에 실린 엄마의 글을 읽는다. 제목이 '꼴값하네'다. 초등학생이었던 딸애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모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 참가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신이 나 남편한테 이 소식을 전화로 알렸던 엄만 아빠로부터 대뜸 "꼴값하나"란 답변을 듣는다. 수십 년 전 아빠가 툭 뱉은 말은 지워지지 않은 흉터로 남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자기 이름이 박정자 아냐? 뉴스에서 백일장 당선자가 나왔다는 이웃의 말에 "여보 나 꼷값했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던 엄마. 35년 동안 우리 남매, 나아가 일하는 못난 딸 때문에 손주 키우시느라 글 쓰는 것을 잊었던 엄마는 남편이 무시하듯 내뱉은 '꼴값한다'의 해답을 다시 찾으러 글쓰기를 시작했다. 때론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하는 말이나 태도는 또 다른 시작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 마음으로 난 케이블 기자라며 취재 내내 무시했던 태도를 보였던 인터뷰이에게 제대로 된 한방을 먹였던 기억이 나기도 하고, 최근에는 정치 새내기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내 sns에 담벼락에 쓴소리를 남기는 사람을 보며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엄마를 무시했던 아빠의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새롭게 다시 시작을 한 엄마처럼, 나 역시 날 향해 날아오는 화살이 행여 가슴에 꽂혀 맺히는 일이 있더라도, 그 화살을 맞고 다시 일어나기를 다짐한다. 나의 자랑스러운 엄마처럼.



*충북일보 2026.04.16자 칼럼에 실린 그립니다.

작가의 이전글여자의 마음이 갈대라고 했던가?  'No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