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자의 슬픔을 잊고 있었네
서로의 자리에서 응원해 줄 수밖에
집을 나서 '생각 도로'를 달리다 회사 앞에 도착했는데도 소리 없는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려 주차장에 몇 분 정도 앉아있다 회사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보도팀 내에 의지했던 k 선배가 어느 날 훌쩍 이 회사를 떠난 후 며칠 뒤에 일이다.
정작 k 선배가 그만두는 날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간 치워지지 않았던 사무실에 그 빈자리를 보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들던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그 빈자리와 함께 업무적인 공백도, 이별의 체감도 점점 더 깊게 드리워갔다.
남녀 간의 이별도 아닌 직장 동료와의 이별을 나만 이렇게 유난스럽게 받아들이는 이유에 대해 나의 풍부한 감수성을 탓해 보다가도 이건 분명 한 남자랑만 17년간 주야장천 연애하다 결혼을 했으니, '이별'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어설픈 날 탓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선배를 떠나보낸 날도, 2~3년 아니 잠시 거쳐간 수많은 후배들을 떠내 보낼 때마다
난 늘 이별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미성숙한 인간이었다.
각자의 처지에서 혹여나 마음이 너무 아플까 봐 회사를 관두기로 하고 한 달간 a에게 일절 연락을 안 했다.
그냥 잘 지내기를 바랄 뿐. 그러다 진짜 사직을 하고 술자리에서 a를 만났을 때도 행여나 서로의 감정선이 건드려져 슬픈 분위기가 될까 봐 더 유쾌하게 소주잔을 부딪히며 나의 행복한 백수생활을 떠들어댔다.
그러다 오늘 여기자 점심 모임에서 a를 보는데 목이 칼칼하다고 말하는 그녀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결국에는 퇴근길 수액 맞고 들어간다는 a 소식에 나의 행복한 백수 생활을 동네방네 떠들어댄 나 자신이 철부지처럼 느껴졌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란 말처럼 나 역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더 진해졌던 그들의 빈자리를
꽤 오랫동안 마음 쓰여했으면서, 회사 떠나서 마냥 좋은 티를 많이 냈던 거 같다.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나
남아있는 자의 슬픔을 잊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일 레슨이라 집에서 첼로 연습을 하고 있는데 옛날 카메라 짝꿍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잘 지내냐? 여긴 여전히 바빠. 공장처럼 일을 쏟아내고 있어. 잘 쉬고, 잘 놀고... 부럽다"
"네 선배님 쉬니까 너무너무너무 좋아요" 이렇게 얘기했는데...'너무'란 부사를 세 번씩이나 쓰면서 지나치게 솔직하게 대답한 것 같아 살짝 후회가 밀려왔다. "선배님 고생하셔서 어떡해요? 저요? 뭐 그냥 그렇죠." 이 정도로 대답할걸...
워킹맘으로 기자 생활을 하는 게 얼마나 고되고 힘에 부치는 일이란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이 새벽 자연스레 눈이 떠져 a를 위해 기도를 했다. 속이 상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이렇게 끄적이다가도
되레 이 글을 보고 더 속이 상할지 모르는데 소심해지기도 하고...'아프지 마....'
이별 앞에서 누군가는 헤어짐이 현실이 된 그 순간부터 슬픔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다
점차 잠잠해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정작 이별 당일에는 담담했는데 뒤늦게 빈자리가 문득문득 떠올라 깊은 슬픔의 웅덩이에 풍덩 빠지는 이들도 있다.
서로의 자리에서 삶의 고비고비를 잘 견디고 헤쳐나가길 응원해 줄 수밖에 없는 우리라서
마음이 조금 무겁다.
수증기를 가득 머금은 장마철의 습한 공기처럼...